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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칼럼

피할 수 없는 우주방사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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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주방사선은 태양 또는 태양계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고에너지의 입자다. 우주방사선은 대기권과 반응하여 보다 낮은 에너지를 가진 방사선 입자들을 생성한다. 우주방사선량은 일정 높이까지는 고도에 따라 증가한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방사선에 노출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방사선에는 자연방사선과 인공방사선이 있다. 평균적으로 연간 방사선 피폭선량의 약 85%는 자연방사선으로부터 나온다. 자연방사선의 반은 라돈 가스에서 나온다. 나머지 반은 우주방사선, 지각이나 공기 중에 존재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로부터 나오는 방사선, 인체 내부에 존재하는 방사성 원소로부터 나오는 방사선 등이다. 자연계로부터 받는 연간 평균 피폭선량은 약 2.4mSv(밀리 시버트)이다. 시버트(Sv)는 생물학적 영향을 미치는, 인체에 흡수되는 방사선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다. 자연방사선도 사는 위치에 따라 3~4배 정도 차이가 있다.

인공방사선의 대부분은 질병 진단과 치료 목적의 의료용 방사선이다. 건강검진의 필수 항목인 가슴 촬영용 X선은 0.3~1mSv, 복부 CT촬영은 1~5mSv, 위 투시촬영은 10mSv 안팎의 방사선량에 노출된다. 항암 치료를 받을 경우에는 수만 mSv의 방사선에 쪼이게 된다. 의료상 피폭은 병의 진단이나 치료 측면에서 위험에 대비한 이득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방사선은 19세기에 발견되었다. 그 당시 방사선이나 방사능의 위험성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방사선의 위험성은 1896년 미국의 엔지니어인 테슬라가 처음으로 관찰했다. 방사선의 암에 대한 유전적 영향은 1927년 헤르만 뮐러에 의해 규명되었다. 그는 이 연구결과로 1947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기 오래전엔 방사선 물질을 치료제로 오용한 적도 있었다. 1932년 미국의 사회학자 이벤 바이어는 수년에 걸쳐 많은 양의 라듐을 포함하는 식수를 애용하고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일반 대중에게 방사선의 위험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인체가 방사선에 노출되면 세포에 손상을 주고 결국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대부분의 여객기가 순항하는 고도인 10㎞ 안팎의 고도에서 우주방사선은 피할 수 없다. 항공여행 중의 피폭선량은 시간이 길수록 증가한다. 고도에 따라 피폭선량도 변한다. 태양 활동이 왕성하면 태양풍이 지구 자기권을 압박해 지구 주변의 우주방사선이 약해진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항공여행 중 우주방사선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속 편하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인천에서 미국 동부로 항공여행 시 피폭선량은 0.1mSv 이하이다. 유럽은 연간 방사선량을 6mSv로 제한하는 법률을 적용한다. 이는 2.4mSv의 자연방사선 노출 기준을 포함한 것이다. 선진국 평균 국민들이 의료용 방사선에 노출되는 양은 자연방사선의 50% 정도로 알려졌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1년에 인천과 미국 동부를 10여 차례 왕복해도 문제는 없다. 일반 항공여행객이 우주방사선에 대해 공포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우주 궤도에서 작동되는 우주선에도 우주방사선은 예외가 아니다. 우주에서 작동되는 모든 우주비행체는 우주방사선에 대비한 설계를 한다. 위성 전자부품도 방사선에 견디는 경화 설계가 필요하다. 지난 50년의 우주 개발 역사에서 약 25%의 지구궤도위성이 우주방사선에 의한 실패 또는 오작동을 경험했다.

우주방사선에 노출되는 수치가 높을수록 인체에 해로운 것은 분명하다. 고공을 자주 비행하는 항공승무원과 우주를 항행하는 우주인은 일반인보다 우주방사선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다. 항공승무원과 우주인을 직업상 피폭으로 분류해야 하는 이유다. 우주방사선 피폭이 인체에 치명적이 아닐지라도 체계적인 피폭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 한국과학재단 우주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