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세로보기>누드-따스한 체온 전하는 휴머니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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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여기 한장의 사진이 있다.몹시 매혹적으로 나를 흔들며 다가온다.여자의 몸 일부분이 깊고 어둡고 쓸쓸하게 긴장감을 주며 온다.드러낸 젖가슴 위의 한 손이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것같다.에로틱한 것을 넘어 엄숙하고 불가사의하다.사진 속의 무엇이나를 이토록 끌어당기는가.뭔가 통렬하게 터질듯하면서 터지지 않는 외로운 격정과 불안이 느껴진다.떨리는 듯한 손은 이상하게 아름다운 악기처럼 운다.
뭔가 마음을 끌어당긴다는 것은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이 끌어당김,생각하게 만듦이 외설과 구분되는 예술의 힘이리라.이 사진은 사진예술 확립에 공헌이 컸던 앨프리드 스티클리츠가 화가인 아내 조지아 오키프를 모델로 찍은 것이다.
나의 시집 『세기말 블루스』의 「나의 싸움」이란 시에 좀더 생생한 느낌을 주기 위해 내 뒷모습 누드를 실었다.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사라지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고 표현하기 위해 셀프누드도 많이 찍었다.역시 옷을 벗었다는 이 유가 가십거리가 되는가보다.심지어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서 저러는 거 아니냐고 오해하는 것같다.
나는 분명한 것들이 좋고 철저하고 치열한 작가들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태도로 작업했을 뿐이다.가장 상식적인 삶을 살기에 많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나의 작업은 자유롭게 더 치열해진다.
일에 있어 대충대충,흐지부지,얼렁뚱땅,어정쩡한 태 도를 혐오한다.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인 성수대교.삼풍대참사등의 대형사고는 그런 대충대충 의식이 일으킨 것 아닌가.영원한 예술의 주제인 누드는 자아의 한 표현이다.사진작가 김남진씨는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 벗은 모습이 아닌가.기 왕 찍는 누드라면 당당하고 힘차면서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성적인 억압이 크면 클수록 욕구불만과 불안이 생긴다.현재 정신과 의사인 남동생 말을 빌리면 『성적 억압으로 생긴 개인의욕구불만과 불안이 모이면 사회적 불안으로 확대된다.꼭 성적 억압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본능이 예술적으로 승 화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사회가 안정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성적 노이로제가 심하다.외국엔 나체촌이 있고 혼탕이 있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진보와 예술발전을 위해,그리고 가식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의 의식을 열어야 한다.
『예술교육의 결핍은 감수성의 퇴화를 가져온다』고 허버트 리드는 말한다.미셀 라공은 덧붙여 『감수성의 퇴화에 이른 인간은 폭력을 열망한다』고 했다.나는 이들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인간이 건강하려면 다양한 음식물을 섭취해야하듯 다양한 의견이 있고,그것이 존중돼야 세상은 임신부의 배처럼 충만하고 기쁘게 출렁거릴 것이다.누드의 거울에 당신의 몸을 비춰보라.어떻게 생겼든따뜻한 사람의 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신현림 약력▶61년 경기▶아주대 국문과 졸업▶90년『현대시학』에 시 발표로 등단▶96년 시집 『세기말 블루스』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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