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리는 에이즈 환자 수술 자선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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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9시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2층 수술실. 머리부터 목덜미까지 덮는 고깔을 쓴 이 병원 대장항문외과 박규주(45) 교수와 의료진 5명이 환자 주위로 다가섰다. 항문에 생긴 사마귀를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의료진은 모두 얼굴에 고글을 쓰고 두꺼운 방수천 같이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신발 역시 무릎까지 올라오는 흰색 방수 부츠였다. 수술을 밖에서 바라보던 최은경(32) 대장항문외과 전임의는 “온몸을 완전히 덮는 복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주복’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수술 부위에서 피 한 줄기가 흐르자 간호사가 즉시 방수포로 감싸 비닐 덮개가 씌워진 휴지통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수술장 벽에는 하늘색 방수 부직포 30여 장이 촘촘히 붙었다. 맥박을 체크하는 전자기기에도 비닐이 덮여 있다.

수술실 바깥 출입문에 낯선 표지판이 걸려 있다. ‘에이즈 환자 수술 중’. 물샐틈없는 복장을 한 이들이 수술하는 환자는 HIV 바이러스 보균자,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다.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박규주교수(右). 박 교수가 동료 의료진 다섯 명과 함께 에이즈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의료진은 에이즈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모두 특수 복장을 하고 있다(左). [이정봉 기자]

◆토요일마다 수술하는 남자=박 교수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토요일이면 특별한 환자를 받는다.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서울대학교병원까지 쫓겨 온 에이즈 환자들이다. 이날 항문사마귀(첨규 콘딜로마) 수술을 받은 이 모(39)씨도 수술을 하려던 병원에서 에이즈환자인 것이 확인돼 5개월을 기다린 끝에 수술을 받았다. 박 교수는 “여기마저 수술을 피하면 에이즈 환자가 수술받을 데가 거의 없다”며 “간호사들도 휴일을 반납하고 한 시간 전부터 나와 수술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한 건 1998년부터다. 에이즈 환자는 면역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민감한 항문에 질환이 많이 발생한다. 박 교수가 한 해 동안 치료하는 환자는 20여 명. 인간관계에 스트레스가 심한 환자들이라 찾아와 감사의 말 한마디 전하지 않지만 그는 10년 동안 토요일에도 수술을 했다.

◆간단하지만 까다로운 수술=서울대학교병원은 에이즈 환자를 수술할 때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관리본부(CDC)가 만든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따른다. 에이즈 환자가 수술을 받은 병실에서는 하루 종일 일반 환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한다. 에이즈 환자를 토요일에 수술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에이즈 환자가 누웠던 수술대를 소독약으로 닦고 걸레는 모두 태워 없앤다. 에이즈 환자는 다른 환자와 병실을 같이 쓸 수도 없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하루에 26만2000원인 1인실을 제공하고도 1박 1만4272원인 6인실 가격을 받는다. 이날 수술을 받은 두 사람의 수술비는 20만원 남짓이다. 병실과 수술에 들어가는 추가 장비 때문에 병원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30만원이 넘는다.

박 교수는 “에이즈 환자만을 특정 의사가 전담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에이즈 환자 지정 병원을 만드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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