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천덕꾸러기 된 ELS … '너 때문에 주가 더 떨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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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를 물고서라도 환매할게요.”

23일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우리투자증권 모 지점에는 환매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주식형 펀드 얘기가 아니다. 주가연계증권(ELS)이다. 직원들이 “중도 환매 수수료가 만만치 않고 당장은 패닉 때문에 시장이 급락한 만큼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며 설득했지만 마음을 돌리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전과는 확 달라진 분위기다.

주가가 떨어져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각광을 받았던 ELS가 최근엔 ‘천덕꾸러기’가 됐다. 한 인터넷 재테크 카페에는 “원금의 60%를 손실보고 중도 환매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곧 “나도 60% 손실보고 있는데 어쩌지 못하고 피가 마른다” “이런 상품에 가입하다니 내가 미쳤다” 등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최근엔 ELS 헤지(위험 회피)를 위한 ‘팔자’ 물량이 쏟아지면서 증시 낙폭을 키운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ELS가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하루 34개꼴 원금 손실 발생=NICE채권평가에 따르면 이달 들어 22일까지 514개의 ELS(공모형 기준)가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총 조사 대상(1711개)의 30%에 달한다. ELS 1개에 50억원 규모로 발행됐다고 가정하면 2조5000억원가량이 원금을 까먹게 된 셈이다.

대부분의 ELS는 기초자산의 가격이 발행 당시보다 30∼40% 넘게 하락하지만 않으면 원금이 보장된다. 그런데 주가가 워낙 많이 떨어지다 보니 원금을 까먹는 ELS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만기(보통 1∼3년)까지 기다려 주가가 발행 당시의 수준을 회복하면 원금을 되찾을 수도 있지만 요즘 증시 상황으론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이 때문에 6월 1조원에 육박했던 공모형 ELS는 이달 들어(20일 기준) 410억원으로 발행 규모가 급감했다. 투자자들이 돈을 넣지 않다 보니 발행이 취소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중도 환매가 어려운 것도 ELS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다. 주식형 펀드는 보통 3개월 이상만 투자하면 아무 조건 없이 환매할 수 있지만, ELS는 따로 비용을 물어내야 한다. 최근 ELS 중도 환매 요구가 폭증하면서 일부 증권사 지점에서는 직원들이 사비를 털어 돈을 물어주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동양종금증권 장지현 연구원은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ELS 투자 위험도 커졌다”며 “수익률뿐 아니라 기초자산의 안전성, 원금 보장 조건, 상품 구조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수 급락 주범” 지적도=22일엔 ELS가 ‘지수 급락의 주범’ 혐의를 받았다. 증권사는 ELS 상품을 팔면서 코스피200지수 선물을 사들이는 식으로 헤지 거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증시 급락으로 ELS가 원금 보장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증권사들은 더 이상 헤지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사뒀던 코스피200지수 선물 등을 팔게 된다. 매물이 쏟아지면 선물 가격이 하락하고, 이는 선물 가격에 따라 자동적으로 주식을 사고팔도록 돼 있는 프로그램 매매의 ‘팔자’를 불러온다. 22일이 딱 그랬다. 이날 원금 보장 범위를 벗어난 ELS가 속출하면서 증권사에서 ELS 관련 선물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장 초반 1500억원 매수 우위를 이어가던 프로그램 매매는 결국 954억원 순매도로 마감했다. 이날 증권사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대 규모인 5190억원의 코스피200지수 선물을 팔았다.

일각에선 증시가 추가 하락하면 ELS 관련 선물 때문에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웩더독(선물이 현물 가격을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한다. 현대증권 문주현 연구원은 그러나 “ELS 헤지 물량은 시장에 단순 충격을 주는 변수일 뿐”이라며 “투자심리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LS=주가연계증권. ELS는 자금의 60~90%를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를 파생상품 등에 투자한다. 대개 연 10~20%의 고수익을 내도록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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