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비에 희생 사병 脫營처리 어떻게 군에 자식 맡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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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충대충 넘긴 하루,무너지는 안보태세」.
5일 군수색대에 사살된 무장공비의 주머니 속에서 이런 메모가발견됐다.
그러나 메모의 주인은 무장공비가 아닌 육군 노도부대 소속 표종욱(表終煜.21)일병이었다.
이 메모는 군이 탈영처리한 表일병이 무장공비에게 납치돼 희생됐음을 밝혀주는 것이기도 했다.
表일병은 지난달 22일오후 강원도남면두무리 두무동고개 부근으로 싸리나무 채취작업을 나갔다.부족한 싸리를 보충하기 위해 혼자 나섰다.오전에 채취했던 곳에 간다고 했다.이후 그는 보이지않았다.그러자 노도부대는 『여자문제로 탈영했다』 고 그의 가족(서울송파구송파동)에게 알려왔다.
다음날 表일병의 부친 표찬능(表贊能.57)씨가 부대를 찾아가『탈영할 애가 아니다.무장공비에게 어떻게 된게 아니냐』고 하자군당국은 『여기는 공비가 나타날 지역이 아니다』고 「탈영한 아들」을 둔 表씨를 나무랐다.
그런데 무장공비는 이곳에 나타났었고 表일병을 살해했다.
表일병은 6일 실종장소로부터 5백 떨어진 인근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됐다.表일병은 실종장소 뒤쪽 야산 3부능선에서 피살된 채 낙엽에 묻혀 있었다.表일병은 발견 당시 흰색 팬티만 걸친채누운 상태로 있었으며 목부분에 손으로 누른 흔적 과 가는 줄로감겼던 흔적이 있었다.육군은 5일 사살된 무장공비가 表일병의 점퍼등을 입고 있었던 점등으로 미뤄 表일병이 도주중이던 무장공비들에 의해 납치돼 피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공비가 나타날리 없다는 지역에 공비가 나타나고,부하가 없어지자 주변을 수색하기는 커녕 탈영으로 단정해 가족들에게 그 병사를 찾아내라고 윽박지르는 군(軍)-.『누구를 믿고 자식을 군에보내느냐』는 많은 부모의 걱정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오죽하면 일병이 「무너지는 안보태세」를 걱정하는가.
멀쩡한 부하가 탈영했다고 검문이나 강화하면서 그 가족을 닦달하는 대신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공비는 더 일찍 소탕됐을 것이다. 表일병의 어머니 朴영하(49)씨는 『군이 우리 아들을 두번 죽였다』며 『종욱이가 탈영병이란 누명을 평생 가슴속에 안고 살뻔했다』며 오열했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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