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原罪'없는 정권의 創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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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부 대선주자가 벌써부터 엄청난 규모의 정치활동자금을 쓰고 있다는 폭로성 문제제기가 더 이상의 파장없이 잦아들어버린 것은의아스럽고 아쉽다.발설자는 그들이 누구인지,자금의 규모는 어느정도인지,그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는지를 구체적 으로 알고 있다고 시사했다.이같은 사실은 그 자신뿐 아니라 당수뇌부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암시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또 야당의원이 아닌 여당의원이 먼저 문제를 제기한 정치적 배경은 과연 어떠한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수 밖에 없다.그러나 이번 문제제기는 그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문제제기의 정치적 동기야 어떻든 우리 정치사에서 이렇게 일찍,그것도 여당쪽에서 먼저 이런 문제를 제기한 일은 이제껏 없었다.선거자금문제는 선거과정이나 선거후에 야당이 여당을 공격하는 단골 메뉴였던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여당후보가 난립해 경쟁이 치열해진 탓일 것이다.역사발전은 종종 우연의 도움을 받는다.어떤 의도에서한 문제제기였건 그것이 정권창출과정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데 기여하기만 한다면 우리 정치는 한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정치사는 법적 정통성을 지닌 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돼 왔다.그래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야당도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이런 우리의 정치사로 해서 과정의 정당성이나 도덕성을 논한다는 것은 이제까지는 사치 라고 할만 했다.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법적 정통성을 지닌 정권이 이미 탄생한 마당에 있어서 정권창출과정의 적법성과 도덕성을 갖추는 일이 더 늦출 수 없는 다음 과제가 됐다고 할 것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누구로부터도 한푼도 받지않겠다고 선언하고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성과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동력 삼아 사정(司正)작업을 펼쳤다.그러나 사정작업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어딘가 개운찮은 구석이 남아있었 던 것도 사실이었다.현 정권도 정권창출과정에서는 과거의 정치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계속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만약 현 정부가 정권창출과정조차 티끌 없이 깨끗했다면 사정작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 높아졌을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양호(李養鎬)전국방장관 비리사건,서울시 공무원들의 버스업자와의 유착사건을 접하고는 金대통령도 실망과 개탄을 금치 못했다고 전한다.이제는 부패척결의 방법을 달리 할 때가 됐다.검찰력을 동원한 사후 엄벌주의는 경종은 울려줄 수 있어 도 부패의 구조와 관행을 깨뜨리지는 못한다.
金대통령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부패와의 전쟁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그렇다면 한국 정치수준의 도약을 위해서도,부패의 씨앗이 뿌려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도 金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제부터의 정 권창출과정을맑고 투명하게 하는 일이다.
지난 시대에 경험했듯 검은 돈이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건네질리가 없다.과거와 같은 노골적인 정경유착이 빚어질 가능성은 없다 하더라도 정권창출과정에서의 불법적인 유착을 방치할 경우 다음 정권의 도덕성을 갖추기 어려울 것은 뻔한 이치 다.만약 현행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이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하다면 고치면 된다.그러나 그렇지 않은한 지키도록 해야 한다.
검찰이 새로이 공직사회의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내사에 착수했지만 사회전반에 광범히 뿌리내리고 있는 부패구조와 관행을 단 시일내 개혁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여야를 모두 합해도 10명 남짓한 대선주자들의 탈법(脫法 )을 견제,단속하는 일만은 가능한 일일 것이다.지금까지의 정치관행이 그랬다는 이유로 대선주자들의 탈법과 비리를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는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키기도 전에 벌써 부패와 혼란의 늪으로 깊이 가라앉을 것이다.
진정으로 도덕성 있는 정권,그래서 자신있게 부패를 척결할 수있는 정권이 되려면 정권창출과정부터가 정당하고 깨끗해야 한다.
무릇 남에게 도덕적으로 엄격하려면 자신부터 도덕적으로 깨끗해야하는 법 아닌가.
국민들도 이제부터 눈을 부릅뜨고 대선주자들을 지켜봐야 한다.
권력창출의 과정부터 바르고 깨끗한 「원죄(原罪)」없는 정권을 탄생시켜 부패없는 사회의 바탕을 만들 책임은 국민에게도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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