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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부끄러운 경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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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강주안 사회부 기자

"요즘엔 신문 보기가 겁난다."

한 서울경찰청 간부의 고백이다. 연일 터져나오는 경찰관 비리를 다룬 기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얘기다. 한 일선 경찰관은 "제복을 입고 밖에 돌아다니기가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최근 적발된 경찰관들의 '범죄 경쟁'을 보면 "이 사람들이 경찰관 맞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신문에 실린 부고 기사를 보고 상주의 집을 수소문해 절도 행각을 하고, 경찰서장급인 총경이 주식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신용협동조합을 인수한 뒤 거액을 빼돌리기도 했다. 경찰관들이 집단으로 미성년자들과 성관계를 한 사실까지 폭로되면서 국민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10일 거창한 이름을 단 회의를 열고 함량 미달의 경찰관을 퇴출하기로 결의하는 등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11일 경찰관이 교통사고 사기에 연루된 의혹이 검찰 수사에서 또 드러났다.

경찰 내부에서도 최근 사태의 원인을 찾아보려 하지만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내놓은 진단은 "과거의 떡값 수수 관행이 사라지면서 개인적 한탕주의가 고개를 드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회가 맑아지면서 '부수입'이 준 일부 '미꾸라지 경찰관'이 경제난 등을 이유로 벌이는 돌출행동이라는 자기변명적 설명이다.

경찰관이 단속 등과 관련해 돈을 받는 식의 비리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최근 사례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의 존재 자체에 회의마저 갖게 한다.

경찰은 우선 철저한 내부 감시 시스템을 작동시켜 충동적 범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부적격자를 입문 과정에서 걸러내는 등의 장기적인 대안도 시급하다.

경찰관의 '범죄 도미노' 현상을 막지 못한다면 경찰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경찰의 처우 개선이나 수사권 독립은 자기 반성과 내부 혁신이 선행될 때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

강주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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