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경영이다>下.정치와 경영의 접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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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0세에 진보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40세에도 계속 진보주의자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 이념이 긴 꼬리를 끌며 모습을 감추고 이념을 따지기보다 정부나 정책을 잘굴러가게만 하면 된다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정치나 정부도 이젠 경영」이라는 경구로 압축되면서 「경영주의」로 명명되고 있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칼럼니스트 존미크레스웨이트 등은 『클린턴과 블레어는 이제 골수까지 「경영주의」이념으로 무장했다』고 지적하고 『미.영 정치 에 경영주의의새 물결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는 지난달 노동당 연례 전당대회에서 「정치 소비자」에게 바짝 달라붙겠다고 약속하는 「국민과의 10가지 계약」을 발표했다.선거전에 나선 클린턴 미대통령은민주당의 전통적인 관심인 저소득층 의료보장에 관 해 효율적 예산운용과 수혜자 감축으로 파산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했다.그는 『미국정부는 계속 작아지고 규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당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세금인상에는 손을 내저으면서도 공립학교 교육등 정부서비스는 잘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 해법은 정치에 경영이론을 접목시켜 공공부문을 효율적으로관리한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중간선거에 대패한데다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던 95년 추수감사절 휴가를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스티븐 코베이,또다른 모티베이션 전문가 앤서니 로빈스와 함께 틀어박혀 보냈다.그가 취임 직후 앨 고어 부통령을 통해 단행한 행정부 조직개혁은 대표적 감량경영방식 사례다.
또 뜻을 이루진 못했으나 전국민 의료보험화는 「관리된 경쟁」이라는 철저한 경영학적 개념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한편 블레어는 선거에 이겼을 경우 구성할 예비내각 후보들을 다투어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원 강좌로 보내고 있다.그의 주요 자문역은 영국의 대표적 경영이론가이자 이 대학원 원장인 존 케이다. 클린턴과 블레어가 경영이론과 손을 잡은 것은 무엇보다 코앞에 닥친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현실적 이해 때문이다.그 이면에는 이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는 설명이 깔려 있다.80년대 경기침체를 겪은 다수의 중간층 유권자들이 고상 한 이념보다 안정적인 삶과 관리된 변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이때문에클린턴과 블레어뿐 아니라 미국 공화당이나 영국 보수당도 경영이론의 접목에 애쓰고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보수.진보의 구도가 허물어지면서 새 정치이념과 그에 적응하는 틀을 찾는 서구의 정치는 경영주의라는 새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워싱턴=김용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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