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경영이다>中.보수껴안는 영국 노동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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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7일 영국 노동당의 한 여성의원이 31년만에 잃어버렸던 아들과 상봉,큰 화제가 되자 현지신문에 재미있는 만평이 실렸다. 「철(鐵)의 나비」마거릿 대처 전총리와 노동당 당수 토니 블레어가 극적으로 재회한 모자(母子)로 희화(戱畵)화돼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노동당을 개혁한다는 블레어의 행동이 노조분쇄에 철권을 휘둘렀던 대처와 똑같음을 신랄하게 빗댄 만화였다.
실제로 블레어의 최근 정책은 노동당이라는 당명이 무색할 정도로 「반(反)노동자」적이다.
이달초 열린 전당대회에서 그는 「소득연계 연금인상제」를 주장하는 당내 좌파의 논리를 세금인상을 유발해 유권자의 표를 떨어뜨린다는 명분으로 단호하게 분쇄했다.또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제한하는 조치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노동당 탄생의 모태가 됐던 노조와의 정치적 결별을 선언했으며 95년 5월에는 기간산업 국유화정책 포기를 천명했다. 요즘엔 한술 더떠 「노동당은 기업인들의 친구」라는 슬로건까지 내걸고 있다.
복지천국의 이상향을 실현코자 했던 영국 노동당내 사회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블레어가 대신 들고나온 이념은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경영주의」다.
『과거 노동당은 시장경제의 경쟁논리를 부정하고 낡은 구호만 외쳐댔다.그러나 「신노동당(New Labour)」은 시장경제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국민들을 훈련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대표적 사례가 16세 이상 청소년에 대한 아동연금 중단 정책이다.블레어는 부모들에게 돈을 주는 대신 이를 청소년들의 기술교육비로 전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복지는 줄이되 경쟁력은 강화하겠다는 경영주의 정신이 물씬 배있다. 블레어의 이와같은 정책은 케케묵은 사회주의를 고집하다간총선에서의 패배가 확실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구 노동당 정권아래서 엄청난 과세부담에 짓눌려봤던 영국 중산층은 세금인상에 대해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자칫 복지확대를 약속했다간 집권후 엄청나게 세금을 인상하려는 음모가 자리잡고 있으리라는 의심을 사게돼 백전백패하게된다.지난 92년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이 패배한 것도바로 이 때문이었다.
블레어는 이처럼 정권을 잡기위해선 더이상 낡은 사회주의 창당이념에 집착해선 안된다며 경영주의노선을 추구하며 총선승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런던=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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