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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대폭락] 내수 기업 악! 소리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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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삼성전자는 달러당 환율이 30원 오르면 어림잡아 분기마다 3000억원의 돈을 더 벌 수 있다. 분기마다 100억달러 규모의 수출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율은 1분기 말 달러당 1154원 수준에서 한달 남짓 만인 10일 1183.1원으로 30원가량 올랐다. 물론 수출 가격 조정 등을 거치게 되지만, 산술적으로는 최근 오른 환율만으로 3000억원을 더 번 셈이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달러당 10원만 올라도 수백억원의 환차익을 얻는다. 이처럼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은 환차익을 무기로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수 기업이나 수입 업체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정반대가 된다. 원가 부담이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의 환율 급등이 골이 깊어진 경기 양극화 현상을 더욱 부추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김용열 기업연구팀장은 "우리 경제가 수출 대기업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환율 급등▶원자재값 상승▶유가 상승이라는 3대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 앞길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내수에 직격탄=내수 기업들은 울상이다. 매년 5억달러 규모의 곡물을 수입해 식품을 생산하는 CJ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환율이 안정돼 전세계적인 원자재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견뎌 왔는데 이 같은 버팀목이 흔들려 원가 부담이 더욱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대상(옛 미원그룹) 관계자는 "환율이 50원만 올라도 1000만달러어치의 옥수수를 수입할 경우 5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든다"며 "경영 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내수 업체들의 고민은 가뜩이나 소비 심리가 위축된 마당에 원가상승 요인을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전가하면 판매가 더욱 줄어들 것이란 점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올 초에도 원자재 가격이 오른 만큼 올렸는데 더 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 심리가 얼어붙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입.유통 업체들도 비상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외제 가죽 등을 수입해 제품을 만들거나 로열티를 내는 업체들이 타격이 클 것"이라며 "최근의 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선전해 왔던 명품 업계도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한국수입차협회 관계자는"가뜩이나 차가 안 팔려 고민인데 환율 상승으로 가격을 올려야 할 처지여서 더욱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수출 기업도 '환율 신기루' 경계령=삼성전자도 사실 환율 상승이 달갑지만은 않다. 올 7조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할 계획인데 반도체장비 같은 것은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출 기업들도 원자재나 장비 수입 부담으로 환율 상승을 반길 형편만은 아니다.

삼성전자 재무팀 관계자는 "환율의 등락은 어찌 보면 신기루 같은 것이고 제조업은 환율 관리보다 원가 경쟁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 대금으로 들어오는 외화도 가급적 빨리 처분하고 있다"며 "올 초 경영계획을 세울 때 이미 올 환율 예상치를 달러당 1100원선까지 보수적으로 잡아 놓았다"고 말했다.

한편 중소기업청은 13일부터 환(換)위험에 무방비 상태인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선물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키로 했다.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 외환거래를 묶어 약 50억달러 규모의 선물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고윤희.최지영.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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