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매출 줄고 대출 막히고 … “이젠 직원들 내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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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용석기자parkys@joongang.co.kr

“직원들 얼굴이 아른거려 며칠째 밤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연 매출 700억원대에 25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김범수(59·가명) 사장의 말이다. 그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젠 직원을 자르는 일만 남았다”고 털어놨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산업현장에까지 본격적으로 미쳐 많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와 매출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금융권 대출이 막히고 영업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기업들은 부도만은 면해야 한다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 사장은 28년간 한우물만 팠다. 중소기업의 꿈인 자체 브랜드로 지난해까지만해도 잘나갔다. 하지만 올 상반기부터 매출이 급감하면서 휘청거렸다. 그는 “3분기는 매출 감소가 아니라 매출이 아예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며 “월말이면 전국 대리점에서 매출 보고서가 올라오는데 1000만원 이상 판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소비재를 만든다. 혼수철인 가을이 최대 성수기다. 김 사장은 “가을까지만 참고 버티면 상황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나빠졌다”며 “지방의 대리점에서는 손님이 없어 하루 종일 지점장과 직원 둘이서 가게를 지킨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는 결국 적자 터널로 들어섰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도 대리점 유지비와 직원들 인건비는 그대로 나가야 한다. 한 달에 직원 250명의 월급으로 나가는 돈은 5억5000만원. 여기에 건강보험료와 복리후생비를 합치면 한 달 인건비가 10억원가량 된다. 김 사장은 “이달부터는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에 환금성 있는 자산은 이미 모두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해외에 투자한 공장도 팔아버렸다. 지난달 중국에 있던 공장 두 개 중 큰 것을 매각했다. 회사 이름으로 갖고 있던 골프회원권 석 장도 팔았다. 사장 차와 함께 직원들이 업무용으로 쓰던 자동차 리스 계약도 다 해지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직영 대리점도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평소 가격의 70%대로 내려서 팔겠다는 데도 사려는 사람은 없다.

김 사장은 “은행 대출은 꿈도 못 꾼다. 이자 손실을 봐가며 결제대금으로 받았던 어음도 모두 환매했다”며 “급한 대로 친구와 친척들 돈을 갖다 썼지만 이젠 친구들도 전화를 잘 안 받는다”고 했다.

이제 남은 카드는 직원 감축뿐. 그는 “직원을 20% 정도 정리해야 회사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 이 말을 한 뒤 그의 눈길은 허공을 향했다. 그는 “나는 우리 직원들 집에 수저가 몇 개인지도 다 안다”며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을 내 손으로 해고할 수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기업을 시작한 것이 그저 후회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인은 반은 노예로 살고 반은 간을 빼놓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이 회사는 수도권 인근에 물류센터를 짓기 위해 허가를 받는 데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허가를 받았지만 마지막에 공무원들이 시공사와 감리사까지 넌지시 지정해 주더라”며 혀를 찼다. 그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는 여전하다고 ‘고발’했다. 그는 “대형 백화점이나 할인점은 우리 매장이 아닌 자기네 점포를 정리하면서 잡일을 할 직원을 수시로 요구한다”며 “거기 다녀온 직원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다시는 그 일에 동원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장정훈 기자 , 그래픽=박용석기자par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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