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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함께>"선현을 만나러 가는 길"펴낸 고제희 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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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3년동안 전국에 흩어진 역사 인물들의 묘를 순례한 사람이 있다.삼성문화재단 문화사업실 고제희(高濟熙.38.사진)과장.직장일에 쫓기면서도 주말.휴일을 이용해 1백40여기를 답사했다.소위 명당을 찾는 풍수가들과는 달리 그는 문화 재로 지정된묘와 선인들의 체취가 깃들인 곳을 찾아 술 한잔 올리며 선인들의 삶을 반추해본다.『선현을 만나러 가는 길 1』(자작나무刊)에는 이같은 高씨의 독특한 발자국이 담겨있다.
『무덤은 그 주인이 이 땅에서 실제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우리와 똑같이 삶의 애증에 몸부림쳤던 이웃이지요.아득한 전설에 묻힌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에요.누구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순리를깨닫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요.결 국 묘를 찾는시간은 제 삶의 질을 높이는 자기성찰로 귀결됩니다.』 高씨는 주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서 어려움을 견딘 사람들을 찾아다녔다.덕망 높던 정승,당대를 풍미한 정치가,천하를 호령한 장군,문필에 뛰어난 문장가,뭇사내의 애간장을 녹인 시기(詩妓),개혁을 부르짖은 혁신가등.무덤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통해 그곳을 찾는 심회를 담은 기행문과 그 주인공들의 행적을 재해석한 역사에세이를 교묘히 결합한다.
『청백리로 유명한 명재상 황희는 죽어서도 후대의 존경을 받으며 편안히 누운 반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조종한 한명회는 살아생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죽어 부관참시로 두번 죽지요.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새삼 읽게 돼요.반면 왕도정치를 꿈꾸며 급진개혁을 시도하다 훈구파의 모함으로 요절한 조광조의 무덤은 단출하기 그지없어 대쪽같은 선비정신을 드러냅니다.』 사육신이었던 성삼문의 묘는 서울 노량진과 충남 홍성,그리고 논산등 세군데나있다.마차에 갈가리 찢긴 시신 조각마다 무덤으로 된 경우다.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기로 꼽히는 김부용의 삶은 순애보 그 자체.19세에 77세의 평안감사 김이양을 만난 그는 김이양이 천수를 다한 후에도 외부와 교류를 끊고 고인의 명복만 빌며 16년을 지냈다.조선 선조때 문장가 최경창■ 사랑을 나눴던 기생 홍랑도 최경창이 죽자 움막을 짓고 9년동안 조석으로 음식을 올렸다.
『선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제 뜻이 옳다고 판단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않는 기개가 있었어요.우리가 되살려야할 민족정신 아닐까요.』 高씨의 걱정은 산업화.도시화에밀려 선현들의 자취가 조금씩 사라지는 현실.궁벽한 산골이었던 곳에 공단.아파트가 들어서거나 잡목.잡초에 덮여 형태를 잃어버려 갈수록 찾기가 어렵게 됐다.정신적 문화유산의 보전에 심각한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죽음 불사한 기개 느껴 문화재에 문외한이었던 저자의 경력도 이채롭다.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高씨의 첫 직업은 대기업의 원가관리.10년동안 계산기만 두드리다 93년 호암미술관소장품 관리직을 맡으며 인생의 대전환을 맞았다.지난 3년의 경험을 묶어 올초 에 『실록소설 문화재비화』도 펴낸 그는 앞으로전국에 산재한 6백여 정자(亭子)를 정리한 자료집을 내겠다고 한다.『짧은 경력에 너무 많은 일이 아니냐』는 물음에 『묘를 찾다 보면 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을 느낀다』고답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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