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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칼럼>간첩과 무기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K장군!지난 여름 잠깐 휴가나온후 공비침투사건이 터졌으니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는가.후방에 편히 앉아 국방을 걱정한다는게 객쩍은 소리같네만 요즘 군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네에게 안타까운 마음 전하지 않을 수 없어 이 글 을 쓰네.자네 알다시피 백면서생인 내가 군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하나 후방 보통시민이 걱정하는 느낌의 일단으로 받아두게.
K장군!8만여 장병들이 밤잠 못자며 공비를 잡으려 동분서주하던 때 국방을 책임진 장관이 일개 무기상의 공갈협박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간첩이 전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무기상이 국방 최고책임자의 족쇄를 채우는 이 기막힌 풍토속에서 우리군은 과연 강군이라 할 수 있는가.어째서 20명 남짓공비가 내려왔는데 3군이 발칵 뒤집히는 전면전 규모의 군병력을동원해야 했던가.하나회를 뿌리뽑은 문민정부의 숙군(肅軍)작업후과연 군의 지휘체계는 바로 잡혔 는가 하는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네.
공자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지만 전쟁에는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있지 않은가.한반도 분쟁상황은 정규전보다는 비정규전 위험이 더욱 높은데 과연 우리의 비정규전 대응전략은 확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네.이미 많은 군사전략가들은 한반도 위기 상황이 비정규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견했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네.북한에서 정치적 내전이 발생했을 때,이번 공작원침투처럼 간첩에 의한 테러와 대규모 무장투쟁이 발생했을 때,제3국에서 북이 테러와 게릴라를 투입해 분쟁을 일으켰을 때,우리 군이 어떤 조처를 해야 하나.이것이 비정규전의 대응방법이지만 이에 대한 대응이 과연 우리 군에 있는가.이게 없으니 20여명의 공비를 8만여 정규군이 뒤쫓아 별성과를 거두지 못한게 아 닌가.게릴라엔 게릴라로,공비엔 특전단이 움직여야 할 터인데 전군을 풀어서 3군이 혼란에 빠졌던게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처럼 잘못된 전략대응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책임을 지는 장군없이 군인사가 끝나버릴 수 있는가.군인사야말로 군의 사기와 기강을 바로 잡는 바로미터일세.하나회를발본색원해 강군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엄선된 첫 인사가 군최고사령탑에 올라 한 일이 고작 무기상과의 야합뿐이니 어떻게 정규.
비정규 대응전략이나마 바르게 세울 수 있었겠는가.80년대이후 11명 국방장관중 5명이 비리와 연관돼 쇠고랑을 찼고 지난 10년간 8명의 국방장관중 7명이 불명예 퇴 진했다면 무엇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게 아닌가.
K장군!일찍이 병법의 대가인 손자는 말했네.무릇 장군이란 나라의 대들보라고.장군의 보좌가 완벽하면 나라가 강해지고 군주가장군을 의심하면 나라가 흔들린다고 했네.해서 군주가 군에 근심을 끼치는 일을 절대 해선 안된다고 엄히 경고했 지.먼저 군대가 전진해서는 안될 때 전진하라 명령하고 후퇴해선 안될 때 후퇴하라 명령하면 이것이 군을 속박하는 일이네.어느날엔 대화고 어느날엔 응징으로 뒤바뀌면 군이 혼란스러워지네.다음,군 행정을모르면서 군을 간섭하거나 명령계통을 무시하고 군령 업무에 참여하면 군을 의심케하네.결국 이런 미혹과 의심이 군을 혼란에 빠뜨려 제후의 환란을 부르고 적의 승리를 불러들인다고 『손자병법』은 깨우치고 있지 않은가.군과 정치의 불가근(不可近)관계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네 .
K장군!다행히 신임 김동진(金東鎭)국방장관의 취임 일성은 백면서생의 어쭙잖은 걱정을 일소해주고 있네.정규전은 물론 비정규전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유형전력 이외에 군기강과 사기등 무형전력 강화에 전력하겠다고 金장관은 말했네.金국방 지 적이야말로 지금 우리군이 처한 문제점을 가장 핵심적으로 파악했다고 보네.
삐삐 찬 신세대의 철없는 행동때문에 군 사기가 떨어지는게 아닐세.나폴레옹 시절에도 군 내부의 세대차는 있었을 것이네.장군의지휘 잘못을 사병에 전가해선 안되지.
문제는 장군이 장군다워야 군이 위엄을 찾고 강군의 훈련을 쌓을 수 있다고 보네.군이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뒷줄을 대기 위해노심초사한다면 군은 결코 군다워질 수 없을 것이네.이 만고의 진리를 자네같은 장군들이 모두 알고 실천한다면 우리의 군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네.
K장군!군 후속인사로 어디로 전임될지는 모르지만 모쪼록 은인자중해서 자네같은 장군이 있기에 우리 국방이 흔들림이 없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배전의 노력을 부탁하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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