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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매케인의 신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호 35면

묘하게도 미국 대선 후보 둘이 모두 자서전 제목에 ‘아버지’라는 단어를 넣었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는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1995), 공화당 존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신념(Faith of My Fathers)』(1999)이다. 오늘은 매케인 이야기만 해 보자.

매케인 책의 표지에는 비행사 복장의 본인 모습과 함께 빛바랜 사진 하나가 실려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항공모함 전단인 38기동부대 사령관이었던 존 S 매케인 시니어 해군 중장과 그의 아들로 잠수함 덴투다함 함장이었던 존 S 매케인 주니어 해군 소령이 나란히 서 있다. 매케인 후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다. 태평양전쟁에서 하늘과 물 아래로 나뉘어 싸웠던 이 부자는 일본이 항복 문서에 사인한 1945년 9월 2일 도쿄만의 미주리함 함상에서 만났다.

귀국길에 오른 매케인 시니어는 나흘 뒤 샌디에이고에서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뒀다. 사후 해군 대장으로 추서됐다. 그는 전쟁 말기 일본 가미카제 공격 등으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종전 당시 몸무게가 45㎏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매케인 주니어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68년 해군 대장으로 진급해 태평양사령관이 됐다. 해군사관학교를 899명 가운데 894등으로 졸업해 조종사가 됐던 그의 아들은 67년 하노이 폭격 중 격추돼 포로가 됐다. 매케인 사령관은 해마다 성탄절이면 남베트남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미군 부대를 찾아 병사들과 함께 지냈다. 포로가 된 아들과 가까운 곳에서 성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72년 북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지휘할 때는 단호했다. 아들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하노이 요충지를 폭격하라는 명령서에 매일 서명했다. 무골 집안의 면목이다.

78년 퇴역한 구축함 존 S 매케인함은 매케인 시니어 이름을 땄다. 이달 초 부산 앞바다의 ‘2008 해군 국제 관함식’에 참가했던 이지스 구축함 존 S 매케인함은 주니어와 시니어 이름을 동시에 딴 것이다. 드문 영광이다.

이 집안은 4대째 장남에게 미들 네임까지 똑같은 존 시드니 매케인이란 이름을 붙여 왔다. 시니어·주니어·3세·4세로 구분한다. 4세는 대를 이어 해군 장교가 됐다. 그의 동생인 제임스는 해병대에 입대해 이라크 근무를 마쳤으며, 또 다른 동생 더그는 해군 비행사다. 옹골찬 무골 4대다.

매케인 후보는 자서전에서 제목의 연유를 밝혔다. 그가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잘 드러난다.

“영광이란 우리 자신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나 대의·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데서 온다. 어떠한 불운이나 부상·모욕도 이를 깨뜨리지 못한다. 나의 지휘관들이 따르겠다고 선서했고, 내 전우들이 충성을 바치자고 격려했던 바로 그 신념이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신념이기도 하다. (포로수용소의) 불결한 환경 속에서 쇠약한 상태로 지내면서도 결코 긍지를 잃지 않았던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심어준 그 신념 덕분이다. (수용소에서 버티는 데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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