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래 터졌다” … 동네 골목서도 ‘대박의 신기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호 22면

중앙포토

불법 도박장은 인터넷 도박과 함께 우리 생활공간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도심 유흥가와 상가 밀집 지역, 주택가 골목길…. 대도시의 경우 집에서 30, 40분 정도만 나오면 얼마든지 도박을 즐길 수 있다.

여전히 활개치는 성인 게임장곳은

기자가 성인오락실 게임기 판매업자인 박모씨를 따라 불법 도박장을 찾은 것은 지난 13일 오후 9시쯤. 박씨는 기자를 서울 논현동 먹자골목 초입에 있는 음식점 부근으로 데려갔다. 2층 건물인 이 음식점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갔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박씨는 “다 왔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도박장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어디에 있다는 거냐”고 묻자 “조금만 기다려 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흰색 보드로 된 한쪽 벽면이 움직였다. 벽인 줄 알았던 부분이 실은 도박장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었다. 계단을 따라 3m쯤 지하로 내려가자 문이 또 하나 나왔다. 역시 몇 초가 지나자 자동으로 열렸다. 도박장 관리인이 폐쇄회로(CC)TV 모니터로 보면서 단골들에게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었다.

20평 남짓 되는 도박장 안으로 들어서자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박씨에게 “요즘 왜 이렇게 뜸했느냐”고 물으며 반가워했다. 박씨는 기자를 “고향 동생”이라고 소개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도박장 안에는 경마 게임인 ‘마왕(馬王)’과 ‘바다이야기’ 게임기가 즐비했다. 게임기마다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둘러보니 바다이야기가 60대, 마왕이 10대로 총 70대의 게임기가 놓여 있었다. 게임기는 거의 빈자리가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젊은이부터 50대까지 연령층은 다양했다. 바다이야기를 즐기는 40대 아주머니들도 눈에 띄었다.

박씨는 귓속말로 “요즘 같은 시기에 강남에서도 이 정도면 꽤 크게 하는 축에 든다”고 했다. 10월 말까지 ‘불법 오락실·도박장 특별 단속기간’이라 경찰이 눈에 불을 켜고 다닐 텐데도 이렇게 큰 규모로 영업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렇게 영업하다 갑자기 단속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묻자 박씨는 “매달 400만~500만원 들여 (경찰을) 다 관리하고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게임을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5만원을 내자 직원이 게임기에 게임 머니를 충전해 주었다. 게임 중간중간에 “○○번 게임기 상어 출현”이라고 외치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1시간30분쯤 지났을까. “고래가 터졌습니다.” 150만원을 딴 한 손님이 ‘대박 기념’으로 매장 전체에 음료수를 돌렸다.
자정이 지나 박씨와 함께 강북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상가와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쌍문동의 한 골목길이었다.

5층 건물에 있는 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겉으로는 그냥 평범한 사무실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컴퓨터 10여 대가 놓여 있었다. 인터넷 도박을 할 수 있는 불법 PC방이었다. 이곳은 논현동 도박장에 비해 규모도 작고, 보안도 허술해 보였다.

사무실 한편에 있는 방에서는 게임을 하고 남은 사이버 머니를 현금으로 교환해 주는 환전실이 보였다. 10대의 컴퓨터 중 7대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손님들은 고스톱·포커·바둑이 등 다양한 인터넷 도박을 즐기고 있었다. 매장 사장이라는 김씨가 박씨에게 “요즘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와 매장이 경쟁적으로 늘다 보니 손님 유치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곳은 주로 사장과 잘아는 단골들이 이용한다고 했다.

새벽 4시. 담배 연기 자욱한 매장을 빠져나왔다. 박씨는 “도박으로 돈을 따는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결국 잃게 된다”며 “불법 성인오락실이나 인터넷 도박장을 찾는 이는 돈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한 방 대박을 노리는 서민이 많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