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학시간에 도박서 이기기 얼마나 힘든지 교육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호 22면

호주 최대의 축제인39멜버른컵 경마대회39(사진 위) 시드니의 한 도박장에 설치된 슬롯머신.

1인당 도박액 세계 1위 국가 호주. 오랫동안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파라다이스’로 불리던 호주가 언제부턴가 ‘도박꾼의 천국(gambler’s paradise)’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성인의 80%가 각종 도박을 즐기고, 그들의 한 해 도박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차지한다. 1년 국가예산의 40%에 육박하는 액수다.

‘도박꾼의 천국’ 호주는

천혜의 항구도시 시드니가 주도(州都)인 뉴사우스웨일스주에만 10만 대 이상의 슬롯머신(호주에서는 포커머신으로 부름)이 있다. 전 세계 슬롯머신의 10%에 해당하는 숫자다. 빅토리아주에서는 ‘멜버른컵 경마대회’를 공휴일로 정해 나라 전체가 한바탕 법석을 떤다. 호주 정부는 도박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200년 남짓한 호주 백인의 역사는 도박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유배지로 내동댕이쳐져 평생 중노동에 시달렸던 죄수들의 정신적 도피처는 오직 도박뿐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나무를 기어오르는 개미들에게까지 동전을 걸고 내기를 했을까.

호주를 한동안 세계 1위의 부자 나라로 만들어준 금광 채굴 붐(gold rush)은 그것 자체로 도박의 속성이 강했다. 천신만고 끝에 한몫 잡은 노다지꾼은 광산촌의 선술집으로 몰려가 도박에 빠져들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1891년 쓴 호주 방문기에 “호주에는 식민지 국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출되지 못한 불만 같은 것이 있었는데 동네마다 세워진 경마장이 그 응어리를 태워 버릴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기록했다.

이렇듯 호주에서는 도박을 일종의 문화로 간주한다. 호주에선 모든 종류의 도박이 건국 당시부터 합법이다. 최근 성행하기 시작한 온라인 도박까지. ‘마크 린들 리서치 센터’의 제프 길링스 연구부장은 최근 필자에게 “호주의 도박은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와 같은 것이다. 주체적 인간이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그런 자유방임 원칙 때문에 호주는 국제적 골칫거리로 대두된 온라인 도박을 허용하는 소수의 국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 정부는 도박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도박 관련 사업에 대한 일체의 통제권을 지방정부에 위임해 도박으로 인한 병리현상을 해결하도록 한다. 각 주정부에 ‘도박 및 경마 부서(Department of gaming and racing)’를 만들어 장관이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도박부 장관들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도박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도박으로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도박장 설치 인허가와 관리 감독은 물론이고, 도박장이 범죄조직과 연계되지 않도록 경찰과 협력한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경우 10만 개 이상의 슬롯머신을 전부 온라인으로 연결해 중앙 모니터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또 “슬롯머신은 이용자가 돈을 따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일정 비율에 따라 돈을 잃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한다. 2006년부터는 고등학교 수학시간을 활용하여 도박에서 이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가르친다.
주정부는 도박장에서 나오는 수익금 일부를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에 의무적으로 기부하고 도박 중독자 치유에 사용토록 한다.

비록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라는 비난 여론이 있지만 큰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도박 때문에 자살까지 기도했던 닉(50·건축가)은 2UE 라디오에 출연해 “슬롯머신과 불륜(love affair)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사기꾼·전과자로 만들었다. 결국 자살밖에는 탈출구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닉은 절명 직전에 구출되어 정부기관의 도움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마크 트웨인의 호주 여행기 마지막에는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들에게 돈과 함께 인생까지 거는 호주 사람들, 그들이 떠나간 경마장에는 휴지조각이 된 마권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는 쓸쓸한 대목이 적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