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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힘으로 차린 ‘밥상’ 드세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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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03면

‘차려 놓은 밥상’이 아니라 황정민(38)이 직접 차리는 밥상이 궁금하다면 대학로에 가시라.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커튼콜까지 내 힘으로 100분을 끌고 가는 그 느낌이 좋다”는 그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유명해져서 돌아오면, 더 많은 관객이 찾겠지. 그러면 연극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겠지” 하며 비운 거리. 그새 대학로엔 개그 소극과 상업 뮤지컬이 활황이다. “모든 공연이 각자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연극 중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게 복귀의 변이다.

연극 ‘웃음의 대학’으로 대학로에 돌아온 황정민

그 작품이 10월 24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막을 올리는 ‘웃음의 대학’이다. 일본의 대표적 극작가 미타니 고키가 1996년 썼고, 국내 초연이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코미디극을 통제하는 억압적 상황에서,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에 맞춰 극작가가 대본을 수정하면 할수록 희곡이 더 큰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는 이야기다.

2004년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고지와 인기그룹 ‘스마프’의 멤버 이나가키 고로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극작가 역을 맡은 황정민은 “연출·연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짜인 희곡”이라며 “나는 그저 대본만 잘 외우고 파트너 송영창 선배의 동선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며 너스레를 피웠다.

하지만 ‘대본만 외우는 것’도 벅찬 상황. ‘연극열전 2’의 아홉 번째 작품인 이 연극에, 그는 원래 영화 ‘공중곡예사’를 끝내고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촬영이 지연돼 공연을 코앞에 두고도 마무리 작업 중이다. 올 초 뮤지컬 ‘나인’ 이후 오랜만에 관객과 직접 대하는지라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쉬는 날 없이 맹연습 중이다. 17일 짬을 낸 기자 인터뷰에서 그는 “예전엔 마흔쯤이면 연기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벌써 마흔이 목전이다.

쉰쯤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이 배우는 짐짓 겸손을 떠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는 듯 보였다.
배우 출발이 1995년 학전 극단의 ‘지하철 1호선’이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연극 이력은 앞부분에 잠시 위치할 뿐이다. 스태프·단역으로 잔뼈가 굵었을 뿐 주연 한번 맡은 적 없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97)’ ‘캣츠(99)’ ‘토미(2001)’ 등 뮤지컬에서 먼저 두각을 보였고, 2001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 스크린에서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이후 ‘바람난 가족’ ‘달콤한 인생’을 거쳐 2005년 ‘너는 내 운명’으로 흥행과 연기상을 동시에 거머쥐면서 스타덤에 오른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지금은 그가 없는 한국 남자 배우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 연극 출연은 진작 희망했지만, 도통 짬을 못 내다가 이태 전 ‘웃음의 대학’ 극본을 받고, ‘이것만은 꼭 하겠다’고 별러서 이뤄냈다.

송강호·설경구·김윤석 등과 함께 대학로가 배출한 연기파인 그는, 지론이 ‘기본에 충실하자’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하면서 오랜 무명을 거쳤지만 한번도 조급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가 연기의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이었고, 무대와 관객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시기였다”고 담담히 회고한다. 감성과 두뇌가 균형추를 잘 맞춘 배우답게 또다시 멋들어진 비유를 꺼냈다.

“새로운 캐릭터란 내게 새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 친구를 사귈 때, 내가 먼저 이해하고 다가가면서 비슷한 점을 끌어내야 가까워지지 않는가. 그래서 모든 역할에서 어딘가 내 모습을 본다.” 순박하고 해맑지만, 공연에 관한 한 철저하게 스스로를 지켜내는 ‘오뚝이 극작가’의 모습에서, 황정민이 발견한 또 다른 ‘내 모습’이 무엇일지, 벌써 와 닿지 않으신가. 11월 30일까지. 문의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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