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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진화론 확실하게 믿게 해 줄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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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

션 B. 캐럴 지음, 김명주 옮김, 지호
360쪽, 1만7000원

유전체학(Genomics)을 이용해 다윈의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타당함을 옹호하는 책이다. 유전체학이란 생물 종의 DNA에 관한 포괄적인 비교연구를 하는 새로운 과학분야. 이것이 유용한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나기에 입증할 수도 없고, 실험은 더더욱 불가능한 진화의 과정과 결과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남대서양의 부베 섬엔 피가 투명한 ‘얼음물고기’가 산다. 이 물고기의 피에는 산소를 운반해 주는 헤모글로빈이 없다. 얼음물고기의 DNA를 연구한 결과 헤모글로빈 분자의 유전암호를 담고 있는 유전자 두 개가 사라졌음을 알아냈다. 그 중 한 유전자는, 흔적은 있지만 지금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채 퇴화하고 있는 ‘분자 화석’이 되어버렸음도 발견했다.

대신 얼음물고기들은 피가 붉은 물고기보다 유달리 넓은 아가미와 세심한 모세혈관, 더 큰 심장, 더 많은 혈액이 있어 신체에 산소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이는 수온이 떨어지고 해류가 변하는 등 5억년 동안의 환경변화에 맞춰 조상들이 물려준 (헤모글로빈 관련)유전자를 폐기하고 새로운 기능을 갖춘 증거라는 주장이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유전학과 교수인 지은이가 주로 해양생물의 유전자 비교연구를 바탕으로 진화론을 옹호한 이 책은 사실 미국 국내용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많은 주(州)에선 ‘균등취급법’이라 해서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을 진화론을 동등하게 가르치고 있단다. 창조론은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믿음이고 ‘지적 설계론’은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들이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날 수는 없는 만큼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설계했음이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나중에 쓸모 없어질 유전자 혹은 환경 변화에 따라 유용해질 유전자를 미리 만들어 넣었겠느냐고 반문하며 이런 주장들을 일축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선 정설이기에 내용 자체는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다. 오히려 인간들의 ‘부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북대서양 대구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인간은 마치 진화사업 관리소장이 된 것 같다. 그 사실을 빨리 깨닫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것”이란 진화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의 말과 함께.

진지한 주제를 다룬 과학책을 이토록 쉽고, 소설 못지 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는 점 역시 놀랍다.

김성희(고려대 초빙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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