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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친정 어머니의 고춧가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올해는 50근이면 될까?」 찌는 듯한 무더위가 서서히 꺾여가던 8월 끝의 어느날 어머니는 벌써부터 고추말릴 생각부터 하신다. 해마다 친정어머니는 정성껏 고추를 말려 시집간 세 딸들에게 나눠 주시곤 하셨다.농촌이 고향인 어머니는 고추보는 안목도 높으셔서 언제나 질좋고 적당히 매운 고추를 잘도 골라 오신다. 이렇게 사오신 고추를 동네에서 가장 좋은 곳을 골라 오전4시면 일어나 널찍하게 널어놓으시곤 수시로 드나들며 말리기에 정성을 쏟으신다.
행여 지나가는 차가 밟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시고,비라도 내리면 어떡하나 외출도 못하신다.고추말리는 내내 일기예보에 귀도 기울이신다.
『힘드신데 고추는 사다먹지 뭣하려 말려요』라고 말씀드리면 고추는 내손으로 직접 말려야 깨끗하고 맛도 좋다며 단념하지 않으신다. 올해도 어머니는 고추 50근을 정성껏 말려 곱게 빻아 세딸들에게 나눠 주셨다.그리고 고추장도 담가놓을테니 갖다 먹으라고 하신다.김치가 다 떨어진 어느날,배추를 사다 김치를 담그는데 절인 배추와 어우러진 빨간 고춧가루가 얼마나 곱던 지! 너무 빛깔 곱고 먹음직스런 김치를 보고있자니 불현듯 고생하시며고추를 말리시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나 전화기를 들었다.
『엄마가 주신 고춧가루 너무너무 좋아요.빨갛고 맛있고 고마워요.엄마.』 가을햇살을 받으며 길가에 널려있는 고추를 볼 때마다,슈퍼에 진열된 고춧가루를 볼 때마다 난 어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어머니! 건강하세요.그래서 10~20년 후에도 항상 즐거움으로 고추를 말리시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김영호〈경기도수원시인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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