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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국보1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제(日帝)의 기세가 꺾이고 패색이 짙어가던 1943년 조선총독부는 각 도경찰부장에게 「유림(儒林)숙정및 반시국적 고적철거」라는 참으로 천인공노할 명령을 내렸다.유림숙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땅의 항일민족사상이 짙게 배어 있는 사 적비들을 모두 파괴해 없애버리라는 명령은 곧 문화유산말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총독부가 작성한 파괴대상 사적비의 목록은 이성계(李成桂)가 왜구를 크게 무찌른 황산대첩비와 이순신(李舜臣)의 명량.
좌수영 대첩비,그리고 권율(權慄)의 행주대첩비 등을 포함해 모두 19건이었다.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비밀지령문 속에 담겨있는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철거할 물건중「황산대첩비」는 학술상 사료로서 보존의 필요가있기는 하지만 그 존재가 관할 도경찰부장의 의견대로 현시국의 국민사상 통일에 지장이 있는만큼 그것을 철거함은 부득이한 일로사료됨.』 가장 먼저 다이너마이트로 처참하게 파괴된 황산대첩비를 필두로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됐으나 비밀지령 이전에 이미 서울로 운반됐던 명량대첩비만은 해방후 원위치에 모셔져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일제는 이보다 앞선 1933년에 이미 「조선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보존령」이란 것을 만들어 우리나라 문화재의 격하정책을꾀했다.모두 가치있는 문화재이기는 했지만 5백3건의 문화유산을국보란 명칭없이 보물로만 지정한 것이다.그때 남대문(崇禮門)이「보물1호」의 분류번호를 얻게 된 것은 문화재적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조사했기 때문이었다.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돼 이듬해 국보와 보물로 나누어 재지정했을 때도 남대문은 자연스럽게 「국보1호」의 영광을 유지했다.하지만 『우리나라 국보1호는?』이란 시험문제가 출제될 정도로 남대문은 온 국민들에게 「으뜸의 국보」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문체부가 광복50주년을 맞아 일제 지정문화재의 재평가계획을 내놓으면서 「국보1호」의 변경여부가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바꿀 필요 없다는 견해도 있고,훈민정음.석굴암.다보탑.팔만대장경 등을 1호로 바꿔야 한다고 주 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문화재를 「국보1호」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에 귀를 기울여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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