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그랑 펠레 전시관 '피카소와 초상'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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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금세기 최고의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은 그에게 창작열을 불어넣었던 7명의 여인들이었다. 첫 여인 마들렌과는 「청색시대」를 열었고,두번째 페르낭드 올리비에와는 「홍색시대」를 시작했고,세번째 올가 크호클로바는 전통주의로 되돌아가게 했다.그리고 마리 테레즈 월터.도라마아르.프랑수아 질로.자클린 로크등으로 이어지는 피카소 의 연인들은 각기 피카소의 그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파리의 그랑 팔레 미술관은 이같은 새로운 관점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큰 흥미를 끌고 있다.18일부터 내년 1월까지 「피카소와 초상」이란 주제의 이 전시회는 피카소가 그린 이 여인들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1백50점을 모아놓았다.피카소가 끊임없이 번갈아가며 사랑하는 여인을 직접 모델로 세워 그렸다는 사실을 시대순과 여인순으로 배열해 쉽게 알 수 있도록 배려도 했다.
스페인 출신으로 19세때 파리로 건너온 피카소가 처음으로 여성에 눈을 뜬 것은 1904년 카바레 주인의 딸 마들렌을 만나면서부터.무명화가로 붓과 물감을 살 돈도 없이 그녀와 함께 곤궁한 삶을 꾸리던 그는 푸른 색으로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채우며 회의주의를 표현했다.
이듬해 그는 페르낭드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 행복감을 장미빛으로 그려냈다.
7년동안 페르낭드와 동거한 피카소는 아프리카 원시문화에도 흥미를 가지면서 1907년 파리화단에 「쿠데타」를 일으켰다.여인들의 목욕장면을 묘사한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깨진 유리를 통해 사물을 보는 듯한 입체주의를 탄생시켰다.
페르낭드와 결별한 피카소는 17년 러시아 출신의 발레리나 올가와 만나 가정을 꾸미고 부와 명성을 함께 거머쥐며 안락한 삶을 시작했다.이 시기 그의 그림이 전통적 화법으로 되돌아간데는『내 얼굴을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려달라』는 올가 의 주문에 따라 입체주의를 중단했기 때문이었다.
피카소는 27년 30세 연하의 마리 테레즈라는 17세짜리 소녀를 길거리에서 만나면서 초현실주의적 경향으로 기울어졌다.당시까지 관습이 엄격하던 때라 피카소는 세인의 눈을 피해 작업장을따로 만들어 그녀의 초상을 그렸으며 결국 두 사 람은 35년 결혼,58년까지 관계를 유지했다.
여성편력이 심했던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와 사는 동안에도 다른여성들을 찾곤 했다.82세의 나이로 재혼해 화제를 뿌린 피카소는 73년 4월8일 오전 그림을 그리다 숨을 거뒀다.
파리=고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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