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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공황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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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경제가 드디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에 긴급구제자금을 지원키로 하면서 이번 월요일에는 주가가 대폭 상승했다. 그러나 주말로 접어들면서 주식시장은 또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세계경제는 이미 장기 불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의 과제는 경제위기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이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대공황을 계기로 시작된 장기 불황 속에서 국제정치가 긴장상태로 접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불황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지역 경제블록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스스로 지역 경제블록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독일과 일본에서는 ‘가진 국가’와 ‘가지지 못한 국가’로 구분해 생각하는 인식이 생겨났고, 이는 나치와 군국주의 대두로 이어졌다.

물론 21세기와 1930년대는 전혀 다른 세계다. 대불황이 일어난다고 해서 또다시 1930년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불황의 교훈을 통해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대불황 이후 세계에 정치적 위기상황을 연출한 나라는 독일·일본·이탈리아였다. 21세기 대불황에서 주목해야 할 나라는 어디일까.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 일본이나 한국 등이 국제정치에 위기 상황을 몰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20세기 대공황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위험한 나라가 되지는 않았다. 이번 대공황 역시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미국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서유럽 국가와 일본·한국과 같은 나라도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직면할 것이지만 사회가 불온한 정치세력의 진출을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불황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위험한 나라는 사회에 커다란 모순을 안고 있는 국가들이다. 1930년대 독일과 일본이 그런 나라였다. 의회제도가 도입은 됐지만 뿌리 내리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시장경제 모두 안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사회적 모순이 가장 큰 나라는 어디인가. 중국·러시아·인도 정도가 아닐까. 최근 이들 국가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가난하지만 언젠가는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격적인 불황이 닥쳤을 때 이들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인도에서는 경제파탄이 곧 정치파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도에선 지금도 힌두 민족주의와 이슬람의 대립으로 유혈 참사가 일어나곤 한다. 최근 러시아 경제의 활황은 단순히 유가 상승에 따른 것이었다. 불황과 함께 원유 가격이 하락한다면 러시아의 정치는 그 영향을 안정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될 것인가.

마지막으로 중국이다. 지금까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지도 아래 중국은 매우 현명한 정치를 해왔다. 하지만 이는 10% 안팎의 경제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경제성장이 지속되지 않을 경우 아직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하지 못한 중국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국민에게 불황의 부담을 요구할 것인가.

중국·인도·러시아가 1930년대 독일·일본·이탈리아같이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현 시점에서 세계의 정치를 안정시키는 데는 이들 국가의 정치상황이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인도·러시아에서 현명한 정치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유럽과 미국·일본·한국 등 안정된 국가들은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교수
정리=박소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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