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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낙태와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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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의 치안에 후한 점수를 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많이 나아진 게 사실이다. 91년부터 10년간 살인과 폭력은 각각 44% 줄어들었다. 또 절도는 약 50%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자 학자들은 무엇이 범죄를 억제했는지에 큰 관심을 두게 됐다. 원인은 여러 가지 거론됐다. 경찰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강력한 마약 단속, 지속적인 호황이 유력하게 꼽혔다. 하지만 어느 것도 보편적인 설득력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갑론을박을 비웃기라도 하듯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2001년 스탠퍼드대의 존 도노휴(법학)와 시카고대의 스티븐 레빗(경제학)교수의 '합법화된 낙태가 범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이다. 두 교수는 73년 미국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하자 시차를 두고 범죄가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논리는 간단하다. 우선 낙태를 하는 여성 가운데는 미혼이나 빈곤 등 아이를 제대로 낳아 키우기 어려운 사정이 많다는 점이 전제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출생 후 15~25년께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도노휴와 레빗은 이런 아이들을 '범죄의 주요 후보자'로 불렀다.

이들이 73년 이후 대량 낙태됨으로써 90년대 범죄 감소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게 논문의 요지다. 73년 75만건에서 80년대 초 연간 150만건으로 늘어난 낙태의 추세와 91년 이후의 범죄 감소세는 인과관계의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두 교수는 또 뉴욕과 캘리포니아처럼 70년대 이전부터 낙태가 합법화된 주에선 범죄 감소세가 더 빨리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73~76년의 낙태수술 1000건당 97년의 절도사건 380건, 폭력사건 50건, 살인사건 0.6건의 감소효과가 있다는 등식까지 제시했다.

이 논문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낙태를 권장하며 인권에 반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건전한 다음 세대로 커나간다는 것은 상식이다. 도노휴와 레빗은 이 평범한 진리를 어렵게 증명하려 한 것 아닐까. 가정의 달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