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야 놀자] 펀드 매니저가 산에 오르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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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알고 지내는 펀드 매니저 한 분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북한산에 간다고 합니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다보면 화낼 일도, 집착할 일도 다 부질없어 보인다 하더군요. 더 좋은 것은 꼬였던 일의 실마리도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전 세계 자본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원인 제공자인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반등은커녕 하락을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이번 주 글로벌 증시가 급반등하기는 했습니다만 여전히 ‘리먼 사태’ 이전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비관론자들은 미국 부동산 가격이 내후년에야 안정될 것이고, 실물경제가 그 이후로도 3년 이상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금처럼 어수선한 때는 산에 올라 해결의 단초를 찾는 그분처럼 자본시장을 먼발치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코스피지수는 올해를 포함해 지난 21년간 여덟 번의 약세를 보였습니다. 연이은 약세 구간은 1990년과 91년, 95년부터 97년까지 두 번 있었습니다. IMF 구제금융으로까지 이어진 두 번째 하락구간 동안 코스피지수는 무려 63%나 급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98년 코스피지수는 49.5%, 다음해는 82.8%나 급등해 3년간의 하락폭을 모두 메웠습니다. 하락과 상승이 이어졌던 5년간 코스피지수 등락률은 0.1%였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많은 기업이 부도 처리되었습니다. 당시 주식 투자를 하던 저도 보유 종목 중 2개 종목이 부도를 맞아 큰 손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펀드는 달랐습니다. 국내 주식펀드 데이터가 없어 외국에서 설정돼 한국에 투자하던 글로벌펀드 수익률로 조사해 봤습니다. 3년 하락기간 한국주식펀드는 -43.1%의 손실을 봤으나 연이어 전개된 상승장 속에 2년간 128.5%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하락과 상승장 5년 동안 한국주식펀드 수익률은 29.9%였습니다. 달러 표시 펀드가 주류인 한국주식펀드가 당시 원화 가치의 하락 속에서도 이런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우량기업 주식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과거처럼 3년 이상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가 펀드 투자자들에게 장기 투자를 권하는 것은 부도로 휴지조각이 될 염려가 없는 데다 언젠가는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신념 때문입니다.

최상길 제로인 전무 www.funddoc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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