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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醫大 신.증설'합당한가-의료부실 우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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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무릇 사람의 생명은 존귀하고 외경(畏敬)스러운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사람이면 누구나 건강과 장수를 누리려는 기본적 욕구가 있다.국민이 자기의 생명과 건강이 중요하다고 인식할수록 의료수요가 커지는데 이런 의료수요를 충족시킬 의사의 적정수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해묵은 사회문제가 돼오던 무의촌(無醫村)도 해소되었다.면(面)단위 보건지소에까지 공중보건의가 근무하고있으며,크고 작은 병.의원을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런 1,2차 의료기 관을 잘 이용하지 않고 감기나 배탈만 나도 3차 의료기관,그것도 대학병원으로만 몰려든다.그러므로 1,2차 의료기관은 폐업이 속출하는 반면 대학병원에서는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적인 현상을 보고 의사가 부족하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분명한 오류다.이같은 우리의 실정으로 미루어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보통의사의 양산(量産)이 아니라 권위있고 유능한 교수의 양산이요,대학병원급 3차진료기관의 증 가라 생각된다.즉 의료의 질 고급화 요구며 이런 요구는 바람직한 것이기도하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3차진료기관은 병상당 2억원이 소요된다.더구나 전임강사급 전문의 양성에는 전투기 조종사 양성 비용에 못지 않은 예산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비용은 국가예산이든 의료보험 또는 자비든 누 군가가부담해야 하기에 결국 의사의 적정수는 국가사회의 경제수준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의사를 양산하면 시장기능에 따라 저질의사는 자연도태될것이라는 단순논리를 펴기도 하지만,저질의사일수록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고 생존에 집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저질의사가 양질의 의사를 구축(驅逐)하게 되는 것은 불을 보 듯 뻔한 일이다.일반 공산품같이 수요자가 질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의료의 특성이다.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양질의 의사를 배출할 능력이 있는 의과대학이 많을수록 좋다.그러나 좋은 의과대학을 만들자면 좋은 교수를 확보해야 하는 일이 필수조건이다.그런데 현존 의과대학에도 교수요원은 부족한 형편이고,특히 기초의학 교수요원 수는 태부족인 실정이다.어린이를 돌볼 수 있는 어른이라 해도 아무나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없듯 용한 의사라 하여 곧 의과대학 교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교수요원을 쉽게 확보할 수 없고 현재도 부족한 처지에의과대학 숫자를 늘린다면 그 결과는 의학교육의 부실로 나타나고저질의사의 양산을 초래하게 된다.차라리 교육여건에 여유가 있는의과대학에 증원을 하는 편이 현안 해결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따라서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의사를 양성하자면 의과대학의 교육여건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기구를 만들어 현존 의과대학의 상향(上向)평준화를 유도하고,수준 이하의 의과대학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야 하며,의사국가시험.전문의시험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이런 노력과 진통 없이 무작정 의대 신설로 의사 수만 늘린다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순형 서울대 의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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