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막달레나 시스터즈' 상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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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예술영화전용관 씨어터 2.0이 개관 1주년을 맞았다. 패션.음식 등 온갖 최신 유행이 휩쓸고 지나가는 청담동 거리에서 '예술'을 고집하며 '알게 될거야''영매-산자와 죽은자의 대화'같은 영화만 상영한 극장이다.

씨어터 2.0은 1주년 기념으로 문제작 한편을 선택했다. 200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막달레나 시스터즈'(사진)가 그 영화. 이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될 당시, 바티칸은 "심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영화가 1960년대 아일랜드의 한 수녀원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들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사촌에게 겁탈당한 소녀를 오히려 가두고, 남학생들의 농짓거리를 거침없이 받아쳤다는 이유로 고아 소녀를 죄인 취급하며, 미혼모를 감금했던 막달레나 수녀원. 그곳에서 소녀들은 손톱이 빠지도록 빨래를 하고, 냉혹한 원장 수녀에게 가죽 허리띠로 매질을 당하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남자를 유혹했다면 달게 받을 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여성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이 영화의 충격은 크다. 먼저 여성들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 때문. 여자들을 죽을 때까지 수녀원에 가둬두고 빨래를 시켜 돈을 버는 수녀들, 이중 삼중 잠금 장치를 해놓고 도망치면 머리를 밀어 버리는 원장 수녀. 게다가 폭력의 주체가 고결한 이미지의 수녀들이라니. 실화라 하더라도 논란을 일으킬 소재임이 분명하다.

감독 피터 뮬란은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가톨릭 교회가 아일랜드 여성을 어떻게 억압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여성의 자유와 성.교육, 노동의 신성함을 억압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모든 신앙을 비난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 의도대로라면 막달레나 수녀원은 현대 사회, 어떤 장소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종교.사회라는 이름의 폭력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4년여를 수녀원에서 썩은 고아 소녀 버나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촛대로 수녀들을 위협하고 수녀원 문을 박차고 나간다. 온갖 꾀를 쓰고, 애원을 해도 열리지 않던 그 문은 너무나 쉽게 열린다. 자유도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리는 문이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7~27일 상영. 18세 이상 관람가.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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