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어머니의 조리사 자격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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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엄마 조리사시험 합격했다.』이른 아침 걸려온 친정어머니의 전화는 아직도 잠이 덜 깬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서너달전 조리사시험 준비를 하시겠다며 통신강좌 교재를 구입하실 때만 해도 난 적극 반대했다.56세라는 연세에 신문 보시는 것조차 눈이 가물거려 큰 제목만 읽으시면서 필기시험 준비를 위해 어떻게책을 보실까가 우선 걱정됐다.
그리고 보통 통신강좌라는 것이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많은데 집안대소사며 교회일등으로 신경쓰는 일이 많으시면서 어떻게 계속해 나가실지 걱정스러웠다.실기시험도 평소 집에서 하던 것처럼 주먹구구식이 아니 고 정확한 계량을 해야 하는데 여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3남매가 결혼과 유학으로 모두 집을 떠나게 되자 이제 당신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으셨단다.사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봐도 어머니께선 바릴게 하나 없는 분이다.바느질이며 요리.꽃꽂이,그리고 남편 내조와 아이들 교육 까지 어느것하나 똑소리나게 하지 못하시는게 없다.그 옛날 여건만 허락했더라면 대학공부도 훌륭히 해내셨을 총명함까지 갖췄으니 별 불만없이 사실거라는 생각을 했었다.그러나 어머니 마음엔 남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 하 나 없는게 아쉬웠던 모양이다.세아이들 교육비와 힘든 살림에 자신에게 투자한다는건 상상도 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약간의 여유를갖게 되신 것이다.
자식이란 한없이 이기적이기만 한 것같다.처음 어머니께서 30여만원을 들여 교재를 구입하실 때만해도 제대로 못 해내실 거라는 생각에 그 돈이 아깝기만 했고 차라리 젊은 딸이나 공부하게손주들을 봐주셨으면 하고 생각했으니 말이다.앞날 이 창창한건 내 인생이고 엄마의 인생은 그냥 그대로 접어두길 바란 못된 딸이었다. 이제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해 보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울컥 눈물이 나온건 용서를 빌고싶은 마음과 자랑스러움으로 인해가슴이 벅차 올라서였을 것이다.이제 받기만을 바라는 이기적 마음을 접고 엄마의 인생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나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사시는 어머니에게 『엄마 파이팅!』이라고 힘차게 전하고 싶다.
임정미<경기군포시산본2동> 임정미 경기군포시산본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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