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의 오판과 북한의 도발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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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 대남(對南)잠수함 침투사건이 극동지역에 숨겨진 긴장과불안정성을 극적으로 환기시켰다는 르몽드지의 진단은 한반도의 발칸화를 우려하는 유럽의 시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거듭된 북한의보복위협이 경우에 따라 분쟁으로 비화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우리 주변에도 전쟁 가능성을 거론하는 경향이 늘고 있으며,북의 오판을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아마도 20세기 최대의 오판은 1938년 9월30일 뮌헨회담결과 영국의 체임벌린과 프랑스의 달라디에 수상이 히틀러 의중을헛짚은 사례로,「뮌헨의 오판」은 남북이 대치한 우리의 상황인식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1938년 10월1일 런던과 파리공항에는 『평화가 왔다』는 환성이 울려퍼졌다.뮌헨회담에서 귀국한 영.불 총리가 『평화를 갖고 돌아왔다』며 히틀러와 맺은 합의문을 군중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체임벌린과 달라디에는 히틀러에게 체코의 주 데테란트주를상납하고 『독일의 영토확장은 없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전쟁위험이 걷혔다고 판단한 것이다.그러나 이들의 판단에 근거한 평화는 착각이었다.달라디에는 『나는 뮌헨에서 함정에 빠졌다』고 2차대전후 고백했으나 이들의 오판이 치른 대가는 엄청난 전쟁재앙이었다.
히틀러는 1939년 3월16일 프라하를 점령,체코를 무력합병했으며,9월1일에는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해 2차대전을일으켰다.
그 다음 얘기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당시 뮌헨회담에 대해 체임벌린등과는 다른 상황판단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영국의 처칠과 쿠퍼 해군장관은 히틀러의 약속을 믿으면 안된다며 영.불 양국이 체코 보호결의를 보이고,독일과 전쟁도 불사한다는 강경대응을 강조했던 것이다.처칠과 쿠퍼는 히틀러 의중을 정확히 읽어냈던 것이다.
뮌헨의 오판은 적대관계에 있는 전체주의,또는 독재자와의 대결외교에 관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자주 인용된다.현대사가들은 뮌헨의 오판이 없었다면 2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적어도 연합국측이 유리한 고지에서 초전(初戰)부터 나치독일 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으로 평가한다.북한의 보복위협과 마주해 김정일(金正日)등 북한 지도층 의중읽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대북(對北)해법을 위한 상황판단에 있어 한.미의 시각이 다른 것처럼 비친다.한국이 강경하다면 미국은 온건쪽인 것 같다. 뮌헨회담의 경우가 적시하듯 독재나 전체주의 국가의 이웃나라는 언제나 평화에 위협을 받게 마련이다.지도층의 결정만으로무슨 일이든 저지를수 있기 때문이다.리비아의 차드침공과 이라크의 쿠웨이트 기습점령에서 보더라도 북한의 보복위협은 결코 온건대응으로 임할 상황이 아니다.
북한에 단호한 결의와 태도를 보여야 한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반도평화는 유지돼야 하며 힘에 의한 평화도 차선의 대책일 수 있다.
미국이 뮌헨의 오판이 남긴 교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섭일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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