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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박철순의 은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프랭크 시내트라가 『마이 웨이』라는 최고의 히트 팝송을 취입한 것은 50대를 넘긴지도 몇해가 지난 70년대 초였다.내로라하는 신인가수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었고,평생에 걸친 무절제한 애정편력과 마피아 관련설 따위에 끊임없이 시달려 일부에서는 한물간 내리막길의 가수로 치부하고 있던 때였다.하지만 후회없이 살았던 한평생을 돌이켜 보면서 앞으로 가는 길 역시 멈추지 않겠다는 내용의 『마이 웨이』는 그가 불렀던 어떤 노래보다 히트했고,전세계의 애창곡이 되기 에 이르렀다.
몇해전까지도 시내트라는 어떤 무대에 서든지 반드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버린 이 노래를 불렀으나 역시 80을 바라보는나이는 어쩔 수 없었던지 노래 도중 이따금 가사를 까먹는 실수를 저질러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재작 년에는 버지니아에서 공연중 『마이 웨이』를 부르다 무대위에서 실신하면서 쓰러져 그의 연예활동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장에서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부터였다.OB베어스의 창단 멤버인 박철순 투수가 잠실구장의 홈경기에 등판해 승리를 거두면이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박철순의 승리를 축하해주 는 것이다.물론 이 노래의 가사는 야구선수로서 박철순이 살아온 삶과 무관하지 않다.
프로야구 원년인 82년 22연승의 대기록을 세우면서 팀 우승의 주역이 됐다거나,지난달 4일 한화이글스와의 경기에 출장해 만40년5개월23일의 좀처럼 깨어지지 않을 승리투수가 됐다거나하는 기록만 가지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매너.기 질.쇼맨십은 말할 것도 없고,다섯차례에 걸친 치명적 부상으로 위기에 빠졌을때마다 강인한 집념과 투혼으로 재기에 성공해 만40세를 넘긴 「훌륭한 선수」로 남았기 때문이다.
「불사조」니,「혼(魂)의 투수」니,「불혹(不惑)의 투수」니 하는 별명들도 그의 「마이 웨이」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하지만 그 스러지지 않는 불꽃투혼도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지 내년 4월의 홈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키로 했다 한다.마지막으로 『마이 웨이』를 듣게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를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 스포츠계 뿐만은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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