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억 달러짜리 시한폭탄 ‘째깍째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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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04면

의류 수출업체인 A사는 지난달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100원 선에 100만 달러를 산 뒤 한 은행에 930원씩을 받고 넘겨줬다. 1년 전 약정 환율 930원에 50만 달러어치의 키코 계약을 한 게 화근이었다. 계약에 따라 이 회사는 만기 때 달러가 880원까지 떨어져도 50만 달러를 930원에 팔아 달러당 50원의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반면 970원이 넘으면 약정 금액의 두 배를 930원에 팔아야 해 손실이 훨씬 커지는 구조였다. 2005년 이후 계속 떨어지던 환율 추세만 믿었던 이 회사는 결국 달러당 270원가량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총 손실금액이 2억7000만원에 이른다.

뇌관 2 환율과 키코의 악순환

외환시장을 뒤흔드는 변수 중 하나가 키코 해소 물량이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키코 계약 잔액은 8월 말 현재 79억 달러에 이른다. 6월 말 101억 달러보다 22억 달러가 감소했다. 이만큼의 달러를 기업들이 조달했다는 얘기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환율이 상한선을 넘길 경우 기업이 계약금액의 두 배를 팔아야 하는 구조여서 수출대금만으론 부족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며 “외환시장에서 이를 구하려는 기업 수요도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환율이 상한선을 넘기기 전에 계약을 청산하려는 달러 수요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남은 물량의 만기가 이달 말부터 집중되는 것도 부담이다. 달러당 900원대가 무너졌던 지난해 10월 말부터 기업들의 가입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은행권과 재계에 따르면 키코 계약의 절반 이상이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의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8월 말까지의 기업 손실은 모두 6434억원, 평가손실은 1조509억원에 달한다.

환율이 200원 이상 뛴 지금의 손실액은 3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김태환 중소기업중앙회 통상진흥파트장은 “키코 계약의 93.8%가 환율이 1000원을 넘지 않을 것이란 전제하에 이뤄졌다”며 “달러당 1300원을 오르내리는 지금 상황에선 키코를 든 기업 전부가 두 배의 달러를 토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남은 79억 달러의 두 배에 이르는 달러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수출 둔화로 기업의 달러 확보가 어려워지고, 외환시장의 수급이 갈수록 취약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환율에 미칠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문제는 기업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은행들은 대개 기업과 맺은 키코의 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통화선물을 사거나 다른 은행과 파생상품 계약을 하고 있다. 기업에서 돈을 받지 못해도 이 계약을 이행하려면 달러가 필요하다. 하나은행도 태산LCD의 부도 이후 키코 계약을 대신 물어주느라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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