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는 내 남편 순진남, 이기남, 아니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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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15면

최근 오랜만에 만난 후배 여의사 P는 와인 한잔에 감정이 격해졌는지 자신의 부부 문제를 필자에게 하소연해 왔다.

“제 남편은 도통 매너가 없어요. 어찌 그리도 전희를 모르는지….”

평소 다소곳하고 자존심 강한 P였기에 그가 이런 불만을 표한 것은 엄청난 파격이었다. 엘리트 의사 P에게 성문제가 얼마나 스트레스였던지 짐작할 만했다. 무엇 때문에 남편이 전희를 피한다고 생각하느냐 물어보았더니 P는 “보수적이고 성지식도 부족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거겠죠, 뭐”라고 단언했다. 그 대답에 필자가 고개를 가로젓자,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P는 되물었다.

전희를 기피하는 남성에게는 의외로 다양한 이유가 숨어 있다. 가볍게는 P의 표현처럼 ‘순진남’인 경우다. 그들은 성흥분을 위해 남성보다 여성에게 전희가 더욱 필요하다는 성지식 자체를 모른다. 그 외에 평소 스킨십도 익숙하지 않고 쑥스러워 삽입에만 몰두하는 ‘소심남’도 있으며, 여성의 만족 따윈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신의 만족에만 급급해하는 ‘이기남’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발기부전이나 조루 등 성기능장애 때문에 전희를 피하는 경우다. 특히 발기 유지에 자신 없는 남성은 발기가 수그러들기 전에 재빨리 성행위를 치러야 하는 절박감에 전희로 시간 끌 여유가 없다. 발기 문제가 있다면 전희를 줄일 게 아니라 발기 기능을 고쳐야 하는데 엉뚱한 방향을 택한 것이다.

실제 발기 반응을 위해 적절한 전희나 스킨십만큼 도움 되는 게 없다. 그런데 발기 유지가 어렵다고 전희나 성행위 중 스킨십을 회피하는 것은 거추장스럽다고 비행기의 날개를 떼어 버리는 것과 같다. 더구나 의식적으로 유지하려 애쓴다고 발기가 더 잘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전희에 몰입하는 것이 흥분반응과 발기에 더 낫다.

발기부전뿐 아니라 조루 남성들도 전희를 피하는 경향이 꽤 있다. 전희를 하면 성흥분이 상승하고 그만큼 삽입하자마자 쉽게 사정에 도달할 것이란 막연한 두려움에 전희 자체를 계속 피하는 것이다. 즉, 자극을 피해 성흥분을 억제해 그 꼭짓점인 오르가슴까지 어떻게든 지연시키려는 속셈인데, 사실은 조루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자극을 피하려고만 들면 성적 자극에 점점 낯설게 되고 실제 성행위에서는 가벼운 자극만 받아도 쉽게 흥분이 급상승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조루 치료에 활용하는 행동요법은 자극을 피하는 게 아니라 자극과 성흥분 반응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만약 발기부전이나 조루 등 성기능장애가 있어 전희를 회피하면 그 원인이 되는 성기능장애 자체를 고치는 것이 우선이다. 전희를 피하기만 하는 남편을 아내가 노골적으로 비난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남편이 왜 전희를 피하는지 고민해 보고 성기능장애의 그늘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혼자 끙끙 앓게 놔둘 게 아니라 성기능장애를 치료받도록 권유하고 돕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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