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펜 하나면 상상력 100% 충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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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24면

이동원 대표가 자신이 의대생 시절 학보에 연재한 만평 캐릭터 ‘까돌이’를 그리고 있다.

이동원(45) CNP차앤박화장품 대표는 피부과 전문의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게 다양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박피술』이라는 피부외과학 교과서를 펴낸 박피수술 전문가다. 그는 한때 ‘지노덤’이라는 바이오 회사를 차려 피부 보형물을 개발했던 벤처 기업가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다. TV 홈쇼핑에 기능성 화장품을 내놓아 20억원어치의 매출을 올렸고, 요구르트 100개가량의 유산균을 농축한 아토피 치료제를 개발해 소아과 병원에 납품하기도 했다. 최근 CNP는 한국 최초로 ‘우주인 화장품’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 이 대표의 작품이란다.

CEO의 일요일 ⑧ 만화 그리는 이동원 CNP차앤박화장품 대표

이런 다양한 활동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대표는 “만화를 곁에 두고 만화처럼 살아온 것이 이유라면 이유”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주말이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아이들은 주로 수채화 물감으로 로봇을, 그는 검은색 사인펜으로 만화를 그린다. 두 아이와 이 대표를 이어주는 끈이 바로 만화다.

이 대표는 알아주는 그림 매니어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 사생대회를 휩쓸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는 마징가제트를 그려 친구들에게, 중학교 때는 스누피를 그려 여고생 누나들에게 판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한때는 미대 진학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만화 캐릭터도 있다. 그러면서 곧바로 사인펜을 잡아 쥔다. 동그라미 두 개를 쓱싹 그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나오고 몸통이 나온다. 얼핏 보면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를 닮았는데, 이 대표는 “수년간 공들여 탄생한 오리지널 이동원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대표가 만든 고유 캐릭터의 이름은 ‘까돌이’. 자신이 다녔던 가톨릭대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까돌이는 학창 시절 그에겐 엄청난 효자였다. “대학 시절 대학 신문인 성의학보에 ‘까돌이’라는 4단 만화와 만평을 연재했어요. 덕분에 의학도답지 않게(?) 시사 뉴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용돈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지요.”

이 대표는 사업하는 데 만화 그리기가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온갖 상상이 가능한 만화를 그리다 보면 무궁무진한 사업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인 화장품도 만화적 상상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요.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으로 이소연씨가 선발됐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우주 같은 극한 환경에서 피부는 어떻게 될까 그려봤지요. 산소 20%와 질소 80%인 일반 환경과 달리 우주복은 100% 산소로 채워집니다. 이러면 정상 세포를 파괴시키는 활성산소가 생겨요. 항산화 복합 화장품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만화가 바로 사업 아이디어의 샘물인 셈이지요.”

직원들에게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경영도 주목받는다. 이 회사는 2005년부터 블라인드 제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이나 회사 운영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임직원들이 무기명으로 제안하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평사원이 날마다 임직원 회의를 주재하는 이색적인 기업문화가 정착했다. 전문병원의 박피 치료를 가정 진료에 적용한 ‘필링 시스템’, 얼굴의 굴곡과 크기에 맞춰 골라 붙일 수 있는 ‘시트 마스크’ 같은 히트상품도 블라인드 제안을 통해 나왔다. “만화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잖아요. 기업 경영에서도 그런 만화 같은 상상력이 발휘되도록 블라인드 제안이라는 마당을 펼쳐준 것이지요. 그랬더니 임직원 모두 만화가가 되더군요. 상상력만 한 경쟁력은 없다는 생각을 다시 확인하게 됐지요.”



WHO?
1963년 서울생. 가톨릭대 의대를 나와 대학 동창인 차미경·박윤호 원장과 함께 차앤박피부과를 운영하다 2001년 CNP차앤박화장품을 공동 창업했다. 병원도, 화장품 회사도 세 사람이 지분 3분의 1씩을 갖고 있다. 기능성 화장품을 주로 만드는 CNP화장품의 연간 매출액은 120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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