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商數와 變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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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신조를 포함한 31명의 북한 게릴라부대는 이른 아침 개성을떠나 미 2사단앞 휴전선 철조망을 가위로 끊고 잠입한 뒤 18일 법원리 삼봉산 위에서 하루를 잔다.19일 낮 나무꾼에 발견되자 5시간 연금하다 풀어주곤 계속 남진해 비봉 꼭대기에서 20일을 보내고 21일 밤 2열종대로 청와대 습격을 위해 자하문밖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68년 1.21사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청와대를 까부시러 왔다』고 유유히 말했던 생포 게릴라 김신조를 본 국민들의 놀라움과 불안은 가위 상상을 절했다.철통같다던 방어선이 이렇듯 쉽게 뚫릴 수 있는가.19일 나무꾼의 신고를 받고도 21일 청와대 코앞까지 쳐들어올 때까지 단 한번저지나 검문을 받지 않았다니 도대체 군과 경찰은 무엇을 했는가.우리를 더욱 암담하게 했던 일은 사흘후 발표된 북의 공식성명이었다.『미제와 박정희집단을 반대하여 궐기한 영웅적 남조선 무장유격대들의 용감한 투쟁이 치열히 전개 되고 있다.』 28년전과 너무나 흡사한 사태가 또 벌어졌다.침투목적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북은 무장 공작조를 또 파견했고,우리의 방어는28년전과 마찬가지로 허술했다.사흘간 동해 연안을 잠수함이 들락거렸지만 이를 감지한 적도 없고,운전 기사의 신고를 받고도 작전이 시작되기까진 3시간이 걸렸다.북한의 중앙통신은 28년전과 유사한 성명전을 거듭하고 있다.『우리는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보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우리의 보복은 백배의 것으로도 될 수 있고 천배의 것으로도 될 수 있다.불질을 하면 불맛을 보게 마련이다.』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28년전과 별로 다를바 없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에나 무장공비를 내려보낼 수 있다는 북의 호전성을 똑같이 확인한다.자질구레한 남파간첩사건은 젖혀두자.청와대 습격에 이은 83년 아웅산 참사사건,87년 대한항 공기 폭파사건등 만행을 거듭했지만 북은 단 한번 사과나 유감을 표명한 적이 없다.언제나 적반하장의 덮어씌우기였다.
명백한 북의 호전성에 맞선 우리의 대응 또한 28년전과 달라진게 없다.구멍뚫린 방위체제에 대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고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군사방위체제를 고쳐야 하고 철저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나라 안팎이 시끄럽지만 한달이 지나지 않아무장공비 사건은 추억의 앨범에 접혀들 것이다.이 또한 변치 않는 우리의 끓는 냄비식 대응이다.
통일이라는 어려운 함수는 3개의 상수(常數)와 하나의 변수(變數)로 이뤄진다고 본다.북의 무력도발과 테러행위는 북의 현 체제가 지속되는한 28년전이나 28년후나 다를바 없는 변치 않는 상수다.또 하나의 상수는 이에 맞선 남한의 상 시적 방어체제 구축이다.탈냉전이라 해서 대북한 방위체제나 대북 정보가 소홀하면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른다는 경계심 발동이 대응 상수다.이 상수를 변수로 생각하기 때문에 대북 전략과 정책에 혼선이발생하고 있다.세번째 상수는 한미간 안보공조체제다.왜 군사주권을 행사해 북을 응징하지 못하느냐는 감정의 목소리는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감정돋우기일 뿐이다.
남은 하나의 변수가 경협과 대화를 통한 포용의 자세,이른바 소프트 랜딩이다.군사적 대결로 풀 수 없는 남북관계에 어떤 틈새를 만들어 북을 개방과 개혁으로 끌어내 군사적 긴장관계를 이완시켜보자는 변수의 노림수다.
문제는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상수와 변수의 대응에 혼란.혼선을빚고 있기 때문에 분노와 불안에서 재빠른 망각과 무방비 사이를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점이다.군사도발에 대응한 군사적 대응은 상수다.안기부법을 고쳐서라도 대북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고,상어급 잠수함이 아니라 피라미급이 들어와도 잡아낼 수 있는방어력을 길러야 한다.이는 변치 않는 상수다.
대화와 경협은 또다른 통로의 전쟁억지력이라는 변수다.군사적 대응과 남북경협은 선택지가 아니라 두개의 다른 축이다.작은 응징은 큰 응징을 낳고 이 응징이 잦아지면 전쟁이 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대화와 경협의 변수를 작동하자는 것이다.
대북정책은 군사력이란 상수만으로 풀 수 없는 어려운 함수관계다.대화없는 군사적 강경통일만을 내세우는 주장은 무장공비 침투에 대한 일시적인 감정적 대응은 될 수 있겠지만 먼 장래를 내다보는 평화적 통일과는 거리가 멀다.분노와 감정을 가라앉히고 무엇이 올바른 대북정책인지를 차분히 점검할 때다.
(논설위원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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