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밥 한 사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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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괴로와서 따뜻한 밥을 지고 오신다
어머니 손길로 더욱 부푼 우리 식구의 밥
폐허에서 일군 뜨끈뜨끈한 천국의 열매다

밥 한 사발엔
해뜨는 바다와 조상의 살냄새와 단비가
매일 일하다 저무는 쓰라린 손그림자가 있다

나날은 밥상을 준비하는 의식이다
아버지는 기쁨을 봉헌하는 사제
어머니가 나르는 숭늉에는 언제나
황혼의 논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으로 가득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우리는 사라진 메뚜기와 수억 개의
촛불처럼 밤하늘을 밝히는 벼이삭을 떠올렸다
불안한 밥 한 사발을 얻기 위해
우리의 등덜미는 산처럼 구부러지지만
흰빛의 밥알을 씹으며 폐허에서도 웃을 수 있으리라
땅굴같은 가난 속에서도 펄펄 살아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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