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CB 저가 발행 ‘회사에 손해 없어’ 무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삼성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등이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법리적으로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경영권 승계 무죄=1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에 대해선 무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免訴) 판결했었다. 하지만 항소심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이 전 회장이 아들 재용씨에게 지배권을 넘기기 위해 헐값에 CB와 BW를 발행했다는 의혹이 핵심 쟁점이다.

하지만 그 배정 방식이 주주배정 방식인지, 제3자배정 방식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주주배정 방식은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 인수 기회를 주는 방식이고, 제3자배정 방식은 특정인에게 주는 방식을 말한다. 대법원 판례는 제3자에게 저가 발행했을 경우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주주배정 방식에 대해서는 판례가 없다.

따라서 삼성 측은 에버랜드 CB 발행이 주주배정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특검은 기존 주주들에게 통지가 없었다며 사실상 제3자배정 방식이라고 맞섰다. 1심은 에버랜드 사건은 주주배정으로, 삼성SDS 사건은 제3자배정으로 봤다.

하지만 항소심은 주주배정이든, 제3자배정이든 회사에 손해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재판부는 우선 두 사건 모두 자금조달 목적이 아니라 지배권 이전을 목적으로 신주를 발행했기 때문에 배정방식에 상관없이 회사 손해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주주배정 방식 측면에서 보면 저가 발행으로 기존 주주들이 손해를 입지만 신주 가치 상승으로 그만큼 이익을 얻게 돼 그 손해와 이익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제3자배정 방식으로 봐도 기존 주주들은 기존 주식 가치 하락으로 손해를 입고 새 주주들은 이익을 얻지만 이것은 신·구 주주 사이의 부(富)의 이전일 뿐 회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전 회장이 에버랜드와 삼성SDS에 끼친 손해가 없으므로 무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1999년 폐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데 삼성전자 등 세계적 기업을 일궈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했고 이 사건을 책임지고 직위에서 물러난 점 등을 보면 1심 형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또 “실정법상으로는 무죄를 선고하지만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은 행위인 만큼 피고인들은 사회지도층으로서 국가 발전에 헌신해 달라”고 당부했다.

◆2개월 내 상고심 선고=삼성특검법상 상고심은 항소심 선고일로부터 2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돼 있다. 현재 대법원에는 에버랜드 사건으로 기소된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사장의 재판이 계류 중이다. 이 사건은 현재 이 전 회장 재판의 경과를 보느라 심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두 사건은 내용이 같더라도 피고인이 달라 병합할 수 없다. 대법원은 두 사건의 결론이 상충되지 않도록 ‘병행 처리’하는 방식이나 아예 두 사건을 따로 처리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수도 있으나 가능성은 낮다고 대법원 관계자는 전했다. 에버랜드 사건 고발인인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와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조세 회피나 지배권 이전이 목적이라고 보면서도 그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며 항소심 판결에 반발했다.

박유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