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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아시아의 시대가 다가온다-아시아 패권경쟁 일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9월초 일본 도쿄(東京)와 아오모리(靑森)에서 열린 제4차 한.일포럼에서는 장차 「한.일안보조약」의 체결 가능성이 논의돼주목을 끌었다.
일본측 참석자인 지노 게이코(千野境子)산케이신문 논설위원이 이문제를 꺼내자 양측 모두 비상한 관심을 보였고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 김태지(金太智)주일대사등이 제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화제를 돌리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지난 18일 아미티지 전 미국무부차관보는 도쿄에서 가진 강연에서 『미.일안보협력은 강화돼야 한다』며 그 배경으로 통일한국이 친일본이 아닌 친중국 노선을 택할 가능성을 들어 주목을 받았다. 냉전시대에도 조심스럽게 진행되어 왔던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는 냉전종식후 미국의 아시아정책 변화와 맞물려 그 속도가빨라지고 있다.좋든 싫든 이미 큰 흐름을 타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국제법상으로는 엄연히 「전쟁상태」인 한반도와 「 떠오르는중국」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있다.
정치.군사대국화의 밑거름은 물론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의 위상이다.단적으로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도 아닌 일본은 지난해 1백85개 유엔가입국중 가장 많은 통상분담금(실제 납부액기준)을 냈다.정부개발원조(ODA)의 규모는 5년째 세계1위를 기록하고 있다.일본총리가 서방선진7개국(G7)참석전에 아시아 국가를 순방,『당신네 나라를 위해 말해줄 게 없느냐』고 묻는 일이 일본외교의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4월의 「미.일안보 신(新)선언」은 일본이 경제에서 정치.군사 분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촉진제가 됐다.
미국과의 유대를 축으로 미국의 대(對)아시아전략에 영합하면서한편으로 정치.군사면의 자생력(自生力)과 국제사회에의 영향력을키워나간다는 일본의 전략은 21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될 것이다.
당장의 외교현안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나 장차 본격화될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도 이 일환이다.
한국등 주변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하는데 대해 당사자인일본도 할 말은 있다.당장 불똥이 튈것만 같은 한반도정세와 쑥쑥 커가는 중국을 보면서 넋놓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2000년대 초반 어느날 갑자기 미군이 철수하고 핵 우산마저 걷힌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일본지도층의 중요한 화두(話頭)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걸림돌은 아직껏 미해결로 남아있는 과거사문제다.일본은 특히 한국.중국의 강경한 자세를 껄끄러워하고 있다.동남아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베트남의 상법.민사소송법 정비를 일본변호사들이 도맡아 주고 미얀마의 아웅산 수 지여사 가택연금 해제여부에 일본의 입김이 들어갈 정도로 맹주에 가까운 영향력을 갖고 있다.
최근 일본관가에는 「9+6」론이 나돌고 있다.일본외교의 현안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입에 관한 아이디어로 일본이 현재 5개국인 상임이사국에 추가되는 대신 G7에 러시아.중국을 끼워주자는 방안이다.이미 어른(경제)인데도 초등학생의 옷(정치.군사)을 입고 있다는 불만이 물씬 풍긴다.
국제정치.군사분야에서 일본이 완력을 키워가는 상황은 안팎의 요소들이 복잡하게 조응(照應)한 결과다.지난 92년 일본의회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PKO)관련법이 통과될 때 일본은 물론 한국도 그토록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자위대의 해외파병 자체는 일상사가 되다시피 했다.
주미대사를 지낸 구리야마 다카카즈(栗山尙一)외무성고문은 파병하지 않고 돈만 냈다가 서방국 사이에서 푸대접을 받은 「걸프전의 교훈」을 예로 들면서 일본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미묘하게 표현했다.
『동맹국간의 신뢰관계는 돈만으로는 살 수 없다.함께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되는 때도 있다.일본의 경우 돈으로 끝낼 수 있는 일과 함께 피를 흘려야 될 일의 중간에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도쿄=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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