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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몽타니에와 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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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뤼크 몽타니에와 로버트 갈로는 최초의 에이즈 바이러스(HIV) 발견자 자리를 놓고 10여 년간 다툰 라이벌이다. 몽타니에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지만 갈로는 초대받지 못했다. 악연은 1983년 시작된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연구원이던 몽타니에는 83년 5월 ‘사이언스’에 LAV라는 바이러스를 처음 보고하고, 이를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갈로에게 보낸다. 이듬해 5월 ‘사이언스’엔 “HTLV-Ⅲ 바이러스가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갈로의 논문이 실린다. LAV와 HTLV-Ⅲ는 나중에 동일한 것으로 밝혀지고 HIV로 이름이 바뀐다.

두 학자의 ‘원조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거액이 걸린 에이즈 진단 검사법에 대한 특허 문제였다. 미국 특허청이 갈로의 진단법을 인정하자 몽타니에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때부터 이 사건은 두 나라의 자존심 대결로 번졌고, 87년 레이건 대통령과 시라크 총리가 나서 로열티 반분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89년 시카고 트리뷴은 “HTLV-Ⅲ와 LAV는 완전히 똑같은 바이러스이며 갈로가 몽타니에의 업적을 가로챘다”고 보도했다. 미국 의회가 조사에 나섰고, 91년 미국 연구진실성위원회는 몽타니에의 손을 들어 주었다. 갈로는 그 후 “몽타니에가 보낸 LAV가 자신의 실험실에서 사고로 오염됐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93년 말 그의 탄원은 받아들여졌다.

HIV 발견과 진단·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갈로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그는 HIV가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반면 몽타니에는 자신이 발견한 바이러스가 에이즈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다. 갈로는 원숭이에 대한 에이즈 백신을 개발했고 지금은 사람의 에이즈 백신 개발을 위해 애쓰고 있는 70대 현역이다. 그런데도 단 한 번의 스캔들이 그를 노벨상 문턱에서 좌절시켰다. 이는 노벨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며 학문적 동지로 지낸다. 몽타니에는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된 뒤 “갈로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며 아쉬워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 명단엔 일본 학자가 눈에 많이 띈다.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 과학자가 벌써 13명이다. 요즘 노벨상은 단기간에 혁신적인 성과를 올린 것보다 수십 년간 검증된 과학자를 선호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실망할 때는 아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