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특별대우와 남녀평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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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 전 한 시중은행이 서울 압구정동에 여성전용 점포를 열었다고 해 화제가 됐다.이 점포는 여성고객이 편안하게 은행업무를볼 수 있도록 객장의 배열과 디자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한다.바닥에는 카펫을 깔아 부드러운 분위기가 나도록 했고 객장카운터도 낮은 곡선형으로 디자인했다.또 벽면에는 쇼윈도를 설치,화장용품.생활용품.패션소품등을 진열했다.백화점이나 문화센터에서처럼 여성 고객이 친숙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지점장을 비롯한 전직원을 모두 여성으로 배치했다.손님도,직원도 모두 여성뿐인 특수점포인 셈이다.
아마도 이 은행은 이 지역의 고객들이 대부분 여성들이어서 은행을 찾았을 때 같은 성(性)의 직원이 응대를 한다면 손님이 훨씬 편하게 느끼게 될 터이고,이렇게 하는 것이 여성들을 위하고 대접해주는 일이라고 판단했음직 하다.그래서 다 른 어떤 은행보다 여성을 생각하고,여성을 존중한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여성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해주는 은행이란 점을 세일즈포인트로 삼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기서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뿌리깊은 편견의 편린을 본다.이같은 발상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의 발로이며 결과적으로 역(逆)차별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여성에 대해 「특별한 대우」를 하는듯 보이지만 그 인식의 밑바닥에는 여전히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이 엿보인다.남성과 더불어 살고 똑같이 경쟁하며 동등하게 대우받는 존재가 아니고 남성이 다스리는 사회의 한귀퉁이에 속해있는 「색다른」 집합체쯤으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은행을 찾는 고객이 원하는 것은 업무를 빠르고 편하게,그리고기분좋게 마치는 일일 것이다.여기에 여자.남자가 따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굳이 여직원이 응대해줌으로써 더 만족할만한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남자직원의 서비스는 고객들이 불편해할 것이란 예단은 지나친 것이 아닐는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시중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의 대부분이 여성이지만 그 때문에 남성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호소는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여성의 사회참여를 늘리고 여성인력을 활용하자는 목소리가높아지면서 여성에 대해 이전과는 또다른 잘못된 인식이 퍼져가고있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여성을「특별대우」하는게 여성의 지위향상이요,남녀평등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여성은 이익도 불이익도 아닌 존재다.
이정민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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