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作을찾아서>신진 시인 2명 農村소재 시집 동시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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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아직까지 뒷산의 부엉이 울어주어 고맙다.떠날 사람 다 떠나도 너만은 남아 나처럼 먼 옛날을 노래 부르고 있으니」「내 고향은 아늑한 시골이다.화원이 있었고,무.감자.고구마 밭이 있었고 농장이 있었다…내 고향은 지금 세기말의 몸살을 앓고 있다.
예전의 고향에서 아늑해지고 싶다」.
고향 혹은 전원.자연을 주로 다룬 신진 시인의 시집 두권이 출간됐다.유진택(39)씨는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윤의섭(28)씨는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을 최근 문학과 지성사에서 각각 펴냈다.위의 시집 머리말에서 볼 수 있 듯 농촌 출신으로 똑같이 자연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그들의 시세계는 삶과 죽음,희망과 종말이라는 양 극단을 치닫고 있어 주목된다.
「아버지,지게를 지고 산으로 간다/텅 빈 지게 위 구름도 내려오고/고샅길가 흔들리던 풀꽃 내음도 뒤따라간다/휘청이며 올라가는 산길도/칠순의 아버지 세월처럼 힘들고/저 산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아버지,흔들리며 간다」.
중앙문단 데뷔작이랄 수 있는 이 시집에서 유씨는 오늘의 농촌.자연을 소재로 삼고 있다.단순한 향수로서의 고향도 아니고 환경파괴 경고 내지 고발 차원의 환경시도 아니다.위 시 『저 산너머에는』 일부에서 처럼 유씨는 그리움을 노래하 고 있다.칠순의 늙은 아버지 지게에서 유씨는 휘청이는,힘든 세월을 읽어낸다.그러나 그 텅빈 지게 위에는 구름도,풀꽃 내음도 얹혀있다.
휘청거리는 것은 민초로서의 삶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구름과 풀꽃의 내음에 취해서다.해서 휘청거림은 흔들림으로 바뀐다.「저산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라는 삶에의 끝없는 그리움과 동경으로. 「32인치 초대형 텔레비전을 사고/요술 같은 컴퓨터를 들여놓아도/내 책상머리에 꽂힌 시집은/토장국의 구수한 냄새만 풍긴다/읽을수록 더 선명해지는 시골길과/등 굽은 황소의 그늘진 울음,/그것들은 모두 우리가 목말라하는 가난의 그리움 이다」(『가난이 밟고 간 길』중).유씨의 그리움은 가난에 대한 그리움이다.자연과 인간,인간과 인간이 가난한 마음을 서로 메우며 살아가야하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그리움을 오늘 풍요로운 삶과 동행시키고 있다.
「집에서는 사람보다 키가 커진 나무들은 사람의 길을 막는다고/조만간 잘라버린다고 한다/이 은행나무는 대가 반듯해서 수놈이라고 했다/열매도 맺지 못하는 쓸모 없는 수놈이/그러나 이 집에도 이미 키워지고 있지 않은가/뿌리째 흔들리는 위기가 이놈이파고들어간 밥줄이었다」.
유씨에 비해 윤씨의 시집에는 죽음이 지배하고 있다.곳곳에서 사라지고 허물어지고 죽고,죽어서 또 죽는 죽음만이 배회하고 있다.위 시 『슬픈 나무』일부분에서도 드러나듯 은행나무도 죽음을당해야 한다.은행도 생산하지 못하면서 통행에 방 해만 주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이 시에서 윤씨는 위기의 뿌리를 캐고든다.거기에는 어려서부터 가출하고 싶었던 나날들 뿐이며 현재의 삶을 끌어줄 추억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가난에 지쳐 살다 죽은 노파가/마지막으로 본 것은/우우 몰려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굶주린 개들이었다/그날 개들은 배를 채운 듯했고/중풍 걸린 노파의 팔뼈가 풀린 것은/삼십년 만이었다」(『축생계』일부분).추억도 전망도 없는 공간에서 펼쳐보이는축생계(畜生界)같은 풍경,종말론적 상상력이 윤씨의 시집을 지배하고 있다.
같이 농촌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유씨와 윤씨의 시세계는 판이하게 다르다.그것은 농경사회 전통의 뿌리가 있고 없음의 차이고50년대와 60년대 생의 엄연한 세대차이로 볼 수도 있다.그러나 70년대생,소위 「아스팔트세대」문인들에게는 희망이든 절망이든 그들의 상상력이 뿌리내릴 원천으로서의 흙,자연은 없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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