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편이냐" 편가르기 분주-보스니아 總選 현지표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인종청소와 증오」로 얼룩진 보스니아내전을 공식 청산하는 역사적인 총선이 실시된 14일.
사라예보의 아침은 낡은 기차를 타고 전쟁전 자신의 주거지로 돌아오는 귀환민들의 행렬과 함께 밝았다.
난민들을 태운 버스들은 세르비아계와 회교-크로아티아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평화이행군(IFOR)이 특별히 설정한 안전루트를 따라 19개 투표소로 향했다. 안전루트 어디서나 중무장한 IFOR들이 혹시 있을지 모를 인종간 충돌에 대비해 삼엄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난민들의 표정엔 평화롭던 지난날에 대한 추억과 지금 살고 있는 상대방 주민들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듯 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중 누가 출마했는지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베오그라드에서 왔다는 밀레 키소(45)는 『난민카드에 투표했다는 표시가 없으면 난민 지위를 잃어버린다고 해서 올 수밖에 없었다』며 『어차피 우리는 세르비아민주당(SDS)후보를 찍을테니까 누가 출마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뒤에서 다른 난민들도 덩달아 『누가 우리(세르비아계)후보냐』며 술렁댔다.
이번 선거가 민주주의 정착의 계기가 되기보다 인종간 분리현상을 더욱 가속화하는 또 하나의 사건일뿐이라는 우려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전7시부터 시작된 사라예보 투표소 곳곳의 분위기는 투표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유권자들은 상대 정파가 득세할 경우핍박이 제도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듯 정강정책이나 후보의 면면보다 누가 우리편이냐만을 확인하는데 열중이었다.
투표장 벽엔 투표방법을 알리는 안내문과 선거유형별로 나누어진후보자군의 명단들이 큼지막하게 붙어있었으나 이를 다시 눈여겨보는 유권자는 거의 없었다.
회교계 점령지역에선 회교계 보스니아 민주행동당(SDA)후보를찍겠다는 주민들의 목소리만이 컸고 세르비아계 점령지역 투표소 앞에선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정당인 SDS 후보외의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찾기 어려웠다.
크로아티아민주공동체(HDZ)후보 지지 분위기가 완연함을 느끼고 살펴보면 역시 크로아티계 거주지역이었다.
투표소 어디를 가봐도 선거가 끝나면 내전 주요세력인 SDS와SDA.HDZ가 결국 다수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엇나가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극우민족주의 정당이 득세할 것같은 분위기속에서도기자는 희망의 징후를 곳곳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사라예보 제2백1투표소인 소드메야단에서 만난 코지치 유수프(48)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라 반목을 치유할 정치인들이 선택됐으면 좋겠다』며 『보스니아 국민의 미래를 깊이 생각하면서 후보를 선택했다』고 투표기준을 설명했다.이번 투표가 한 회교사제의말처럼 「깜깜한 터널의 끝에 보이는 한줄기 빛」이 되기를 기자도 간절히 기원했다.
사라예보=한경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