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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기자의 ‘경제로 본 세상’] 진압보다 강력한 ‘시위 피해 집단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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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법무부가 최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 질서 확립 방안’을 발표했다. 불법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과 이행강제금 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사실 불법시위에는 한나라당이 한때 추진했던 집단소송제 도입이 즉효다. 물론 현행법상으로도 시위로 피해를 본 사람이 시위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가령 2006년 한·미 FTA 체결 반대 시위로 피해를 본 지방자치단체들이 시위 주최 측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일부 승소판결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지자체처럼 피해를 많이 본 사람에게나 가능한 얘기다. 영업상 손실이라든가 교통체증으로 본 피해 등은 따지기도 어렵거니와 각자의 피해액도 그리 크지 않다. 이겨도 받을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소송을 할 인센티브가 없다. 그러나 피해자가 한데 모이면 피해액은 아주 커진다. 이럴 때 시민들이 집단소송을 할 수 있도록 여건만 조성된다면 소송은 활발해질 게 틀림없다.

미국은 이런 식으로 효과를 본 적이 있다. 2005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 뉴욕시의 교통공사노조가 전면 파업에 들어가면서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뉴욕시 정부가 파업을 중단하라고 아무리 압박해도 전혀 먹히지 않던 노조가 3일도 채 안 돼 파업을 철회한 건 뉴욕시의 백화점과 상인협회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을 앞두고 파업으로 10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도 불법시위가 줄어든다. 시위자들은 자신의 시위만 생각한다. 시민들이 교통체증으로 속이 타들어가도, 상인들이 장사가 안 돼 굶어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해도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남의 손실은 내 손실이 아니라서다. 기업이 공해물질을 배출할 때 인근 주민이 보는 피해는 생각하지 않듯이. 나 때문에 남이 입는 손실을 경제학에서는 외부비용이라고 한다. 외부비용을 나의 비용으로 포함시키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주민들은 공해병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토머스 홉스 식의 만인 투쟁이 일어나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도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시장이 실패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외부비용은 내부비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장 주인에게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부과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시위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폭력시위를 할 때마다 거액의 손실이 청구된다면 시위가 크게 줄 것은 명백하다.

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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