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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에 ‘김정일 건재’ 과시 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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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스 분석 와병 중으로 알려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51일 만인 지난 4일 북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 재등장했다. 8월 14일 군부대 방문 보도를 끝으로 공개 보도에서 사라진 이후 처음이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 창립 62돌을 맞아 김일성종합대학팀과 평양철도대학팀 간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김정일 동지는 경기를 보시고 대학생들이 예술·체육 활동도 잘하고 있다고 성과를 축하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재일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책임 간부, 관계 부문 일꾼들이 경기를 함께 보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람했다는 일자와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5일에도 노동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축구 경기 관람 기사를 싣고, 평양방송(라디오)·조선중앙TV도 이를 반복 보도했지만 김 위원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은 보도에 없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이와 관련, “북한 내부에서도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상당히 확산됐다는 첩보가 있다”고 귀띔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중국 고위 관리를 인용, “식량난 등으로 평양에서도 민심 이반이 대단하다고 들었다”며 “축구 경기 관람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민심 악화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북한이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대북 ‘삐라’ 살포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나온 것도 ‘김 위원장 건강 이상’을 담은 삐라가 북한에 들어가 민심을 흔드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따라서 당국은 그의 재등장 보도가 바깥으론 주변국의 북한 급변 사태 대비 움직임 등 북한 흔들기를 차단하고, 안으로는 장기 공백에 따른 주민의 민심 동요를 막아 체제 안정과 결속을 다지기 위한 ‘건재 과시용’으로 보고 있다. 관람 때 북한의 유일체제 사상 무장을 주도하는 이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동석했다는 보도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김 위원장의 축구 경기 관람이란 보도 자체도 전례가 드문 것이다. 올 들어 김 위원장이 체육 행사를 관람했다는 보도는 전무했다. 따라서 평소 북한 매체가 크게 취급하지 않는 대학 간 축구 경기 관람으로 보도해 김 위원장의 거동을 노출하는 위험을 줄이려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06년 미사일 발사 직후와 핵실험 직전 각각 38일간, 19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재등장했다. 당시 군 행사에 참여하거나 군부대를 방문하는 그의 사진까지 공개됐다. 정보 당국은 최근 김일성종합대와 평양철도대학 간 축구 경기가 열린 곳을 김일성종합대 내로 보고 있다. 경기 자체가 작은 행사였다는 의미다. 통일부 관계자도 “동영상, 사진이 없는 통신만의 보도는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이번 보도를 김 위원장의 정상 업무 복귀의 신호탄으로 간주할지에 대해 정부는 신중하다. 결국 김 위원장의 상태는 이번 주중 후속 공개 행보에 따라 분명해질 전망이다. 북·중 수교 기념일(6일), 당 총비서 추대 기념일(8일), 당 창건 기념일(10일) 등 대형 기념일이 잇따라 이어지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4일 김 위원장의 동정을 보도했다면 10일 당 창건일엔 나타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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