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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 노동, 이익 절반 사회 환원‘전태일의 꿈’이 실현되는 곳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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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22면

7일 문을 여는 ‘참 신나는 옷’ 공장 내부. 미싱10대와 특수 봉제 기계 6대가 놓여 있다. 초록색 계열의 인테리어가 산뜻하다.

서울 장충동 장충단성결교회 옆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3층짜리 건물. ‘㈜참 신나는 옷’의 공장 겸 사무실로 쓰일 곳이다. 개장식(7일)을 닷새 앞둔 2일 찾아가 보니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이 회사 전순옥(55) 대표는 건물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공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전 대표는 고(故)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다.

근로자들이 만든 ‘참 신나는 옷’의 전순옥 대표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 열사는 생전에 30쪽에 걸쳐 자신이 구상한 ‘모범업체’를 적어 놓았다. ‘미싱 50대, 종업원 157명, 자본금 3000만원, 미싱사 급여 월 3만원(당시 평균 임금의 3배), 노동시간 하루 8시간 이하’.
‘참 신나는 옷’은 그의 꿈을 계승하려 한다. 시작은 ‘미싱 10대, 자본금 5000만원, 미싱사 급여(A급) 월 180만원’으로 한다.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 주 5일제를 지킨다. 이익의 50%는 사회에 환원하고, 나머지는 대주주뿐 아니라 회사 구성원 모두에게 공정하게 나눠줄 계획이다. 의사결정 과정은 모두 공개하고, 예산 집행은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한다.

이 회사가 지향하는 것은 전태일 정신의 계승만이 아니다. 주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게 이 회사의 포부다. 외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어떤 옷을 만드나.
“올해 기업·노조 등의 단체복 및 유니폼을 만들어 약 5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내년엔 아동복과 여성복 시장, 3~4년 후엔 교복 시장에도 진출한다. 아동복은 0~7세용인데 온라인 판매를 시작으로 백화점 등으로 유통망을 확장할 예정이다. ‘아이스러운’ 디자인으로 다른 아동복 브랜드와 차별화한다. 아토피 걱정 없는 천연 소재 제품이 주력이다. 여성복은 직영 매장을 중심으로 해 온라인으로 유통망을 넓혀 나갈 거다. 전통과 현대 감각이 결합된 디자인의 제품으로 틈새 시장을 노릴 것이다. 유통 마진이 적기 때문이 가격이 합리적이다. 제품의 질은 자신 있다. 유명 의류업체의 디자이너 및 전문경영인도 영입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옷’이라는 컨셉트로 수출 길도 모색할 계획이다.”

전순옥 대표

-일반 의류 제조 회사와 뭐가 다른가.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만드는 옷이다. 아직도 동대문 일대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하루 13~14시간씩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월급을 못 받는다. 2, 3차 하청을 받아 옷을 만드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의료보험이나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참 신나는 옷’은 모두 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되며, 4대 보험에 가입된다. 월급 수준도 업계 평균보다 높다.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예산 집행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한다. 기술자를 중시해 경영진과의 월급 차이가 거의 안 난다. 노동자들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 어떤 복지 혜택보다 중요하다. 소비자에게는 제조원가와 생산과정도 공개한다.”

-회사 설립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가장 큰 고민은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모두를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 사회란 학연·지연 등으로 묶여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부스러기로 남는다. 볏단으로 묶이지 못한 알곡이 이삭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그런 부스러기까지 감싸안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첫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하며 위로한다. 그런 생각을 놓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노동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2001년 귀국했다. 정치를 할 거라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다시 동대문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정치는 생활 속에서 나와야 한다. 정치나 운동이 별건가. 사람 사는 거다. 정치도 세 끼 밥 먹고, 잠자고, 똥 싸는 일상생활 속에서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진보 정치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10년째 말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철폐될 수 있나? 비정규직도 불안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기업의 고용에 대한 부담도 줄여 줘야 한다. 사회는 변하고 있다. 옛날식 운동은 안 된다. 동대문에 다시 간 것은 내가 그곳을 떠났던 80년대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는지 체험하면서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변한 게 없었다. 임금이 싼 중국과 동남아 국가로 의류사업이 넘어가면서 오히려 사정이 더 나빠졌다. 공부방과 보육시설을 만들어 노동자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한편 능력을 발휘하고 노동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빠인 고 전태일 열사가 봤으면 뭐라 할 것 같나.
“글쎄…. 잘해 보라고 할 것 같다. 꿈을 향해 가는 공동체를 하나 만들었고,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돈을 많이 벌긴 해야겠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참 신나는 옷
참여성노동복지터가 운영하는 패션·봉제 기술학교 ‘수다공방’ 출신들이 주축이 돼 만든 의류 회사다. 지난해 말 패션쇼를 하고 남은 후원금 5000만원을 자본금 삼아 올 1월 설립했다. 씨티은행과 한국노총의 후원을 받고 있다. 하반기엔 증자도 추진한다. 공익성 확보를 위해 비영리법인 및 임직원 주식 비율을 50% 이상으로 유지할 예정이다. 7일 서울 장충동에 자체 공장과 함께 단독 매장을 연다. 회사 설립 및 운영 과정을 ‘수다랩(www.soodastory.com)’을 통해 공개하며, 많은 경영·경제학과 대학원생이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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