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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만큼은 비싸도 좋은 것 가려 먹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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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12면

서울의 한 할인점 유기농 코너에서 주부가 채소를 고르고 있다. 신인섭 기자

1일 오후 10시 서울 잠실 홈플러스 지하 2층 식품매장의 계란 코너. 피크 타임이 지난 시간이라 계란 선반이 거의 비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값이 싼 일반 계란이 대부분이다. 방사유정란·무항생제·유기농의 표시를 단 프리미엄급 계란은 모두 팔려 나갔다. 바로 옆 두부 코너도 마찬가지다. 유기농이라고 표시된 제품은 3개만 남았다. 이 매장 이승훈 부점장은 “고객들이 일반 제품보다 배 이상 비싼 유기농 제품을 선호한다”며 “비싸더라도 먹는 것만큼은 더 좋은 것을 가려 먹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광우병·멜라민 사태의 여파로 소비문화가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유기농 제품의 매출이 급증하고 웬만한 먹거리는 주말농장에서 직접 키우겠다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멜라민·광우병 파동에 달라진 소비자들

비싸야 더 팔린다
할인점업계 1위인 이마트의 경우 유기농 제품의 올해 매출 신장률(1~9월)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이상 크게 뛰었다. 이 같은 현상은 분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반 분유의 매출이 15%가량 줄어든 반면 프리미엄급 분유는 33%나 급신장했다. 음료 부문은 일반이 3% 신장한 데 그쳤지만 유기농 음료는 115%나 늘었다. 최근 발생한 멜라민 사태로 과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간식으로 대신할 수 있는 과일 매출도 크게 늘었다.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사과 등 유기농 청과류의 매출 신장률은 32%를 기록, 일반 청과류(5.3%)를 훌쩍 넘어섰다.

유기농 채소보다 더 비싼 수경(水耕) 재배 채소도 인기다. 온실에서 흙이 아닌 물과 영양액으로 키운 채소다. 이마트가 수경 재배 채소를 첫 출시한 2005년에는 매출이 60억원 정도였으나 올해는 연말까지 100억원대로 껑충 뛸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마트도 고가의 유기농 식품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친환경 브랜드인 와이즐렉유기농의 경우 올해(1~9월) 과일은 30%, 야채는 7% 증가했다.

무공해 먹거리 시장에 대한 기업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이마트는 올 6월 말 울진군과 친환경 광역단지를 조성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여의도 1.2배 크기(1000만㎡)의 땅에 쌀·딸기·버섯·파프리카 등 9개 품목을 재배해 전량을 이마트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풀무원은 2004년부터 중국 지린성에 600만 평 규모의 농장과 재배 계약을 해 연간 2000~4000t씩 유기농 콩을 수입해 오고 있다. 풀무원 류인택 차장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콩만으로는 유기농 두부와 콩나물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며 “지린성 등 중국 동북 3성은 유기농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 지역”이라고 말했다.

주말농장에서 직접 키운다
도심 근교에서 직접 소규모로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주말농장도 인기다. 농협중앙회가 만든 주말농장 포털사이트 ‘주말농장(www.weeknfarm.com)’에 따르면 주말농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매년 20~30%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9개월 사이에는 3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주말농장에는 서울·경기권에만 182개 등 전국적으로 546개 주말농장이 등록돼 있다. 각 농장의 주소나 전화번호, 농장 소개 등의 내용이 블로그 형태로 제공된다. 농협중앙회 이길수 지역농업팀장은 “최근에는 텃밭 농사를 넘어 목장에서 소나 사슴·닭 등을 분양 받아 키우는 형태의 주말목장이나 과수원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며 “먹거리에 대한 불안심리가 주말농장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접 키우진 못해도 농장을 찾아 채소나 가축이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다. 전국 71개 지역 생활협동조합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생협연대의 경우 3일 수도권 지역 조합의 회원 1000명이 버스 20대를 대절해 충남 홍성의 풀무생산자협동조합과 농장을 방문했다. 이들은 이날 하루 동안 벼 베기 체험, 메뚜기 잡기, 친환경 떡·술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생산 현장 방문 행사 등을 했다. 생협연대는 매달 한 차례 200여 명의 ‘물품위원’이 수도권 등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생산지를 방문, 점검하고 있다.

생협연대 이진백 간사는 “이번 홍성 방문 행사에는 일본인 등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대거 참여해 먹거리 안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3만5000명 수준이던 생협 조합원 수가 최근 4만9000명 선까지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회원 수 15만2000명의 국내 최대 친환경 농산품 직거래 단체인 한살림도 매월 1~2차례 지역별로 나눠 생산 현장을 찾아가 보는 ‘생산지 탐방’ 행사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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