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금융위기, 미 하원 法통과로 끝난 게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호 02면

미국 구제금융 법안이 4일 오전(한국시간) 하원에서 가결됐다. 표결 결과는 찬성 263표, 반대 171표. 지난달 29일 부결시켜(찬성 205표, 반대 228표) 온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하원이 이번엔 아량을 베푼 것일까. 앞서 1일 상원에서도 이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에 미 정부는 7000억 달러(약 770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월스트리트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미 금융위기는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메릴린치의 매각을 비롯해 크고 작은 투자은행들의 줄도산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금융기관에 긴급 수혈이 이뤄지게 됐다. 미 경제를 위해서나, 글로벌 경제를 위해서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구제금융안 통과를 곱씹어보면 미국의 조치가 금융위기를 해소했다고는 결코 평가할 수 없다. 오히려 숱한 지뢰들이 감춰져 있다. ‘시장 자유’의 수호자처럼 행세해 온 그들은 가장 반시장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월스트리트 머니게임의 사적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투입했다.

3일 통과된 구제금융 법안엔 몇 가지 수정안이 추가됐다. 수정안엔 예금자 보호한도를 확대하고 1500억 달러 규모의 감세조치를 취하는 게 포함돼 있다.

‘세금으로 월스트리트의 탐욕스러운 부자들을 살리려 한다’는 대중의 반발을 무마해 보겠다는 알량한 사탕발림이다. 예금자 보호한도 확대는 그렇다 쳐도 대규모 감세가 포함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국채 발행으로 조달할 7000억 달러는 언젠가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돈인데 오히려 세금을 깎아주겠다니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이 때문에 발생하는 달러 부족 사태는 그럼 한국 같은 곳에서 끌어내 메우려는 속셈인가.

워싱턴에서 춤추는 미 정치권의 행태 역시 포퓰리즘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레임덕(권력 누수)을 지나 브로큰덕(권력 통제 불능 상태)이란 조롱을 듣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동네북으로 떨어졌다.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으니 국가의 연속성에 심각한 의문마저 자아낸다. 내년에 들어설 새 정권이 과연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미 경제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3일 발표된 9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8월보다 15만9000명 줄었다. 이 같은 감소폭은 2003년 3월 이후 최대 수준이다. 9월에 파산을 신청한 기업 수는 5813개로 1년 전보다 67% 늘어났다.

대미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선 그만큼 힘들어질 것이다. 요즘 기업인 사이에선 98년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시장의 신뢰를 잃어가는 ‘거꾸로 환율정책’이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미국의 불똥이 한국에 옮겨 붙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