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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걸이 없는 낮잠의자, 60년 전에 21세기를 읽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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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11면

찰스 앤 레이 임스 부부의 대표작 중 하나인 LCW 체어(1946). 합판을 구부려 만든 것으로 대중성을 고려해 디자인한 최초의 작품으로 꼽힌다.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홍대 앞 카페 골목을 거닐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의자가 놓여 있는 작은 카페들을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모습과 색상의 의자들이 어우러진 공간은 자연스레 길거리를 지나는 연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어느새 연인은 카페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는다.

이처럼 거리를 오가다 카페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의자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의자가 있다. 바로 찰스 앤 레이 임스(Charles & Lay Eames)가 디자인한 ‘임스 플라스틱 암체어’들이다. 다리의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모두 임스 부부의 작품으로 1950년대 대표 디자인이다.

2 사진 촬영 중인 찰스 임스 2, 3 의자 ‘라 셰이즈’와 그것의 영감이 됐던 조각 작품 ‘플로팅 피규어’

찰스 임스(1907~78)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태생의 디자이너로 전공은 건축학이었다. 졸업 후 유럽으로 건너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 같은 유명 건축가 밑에서 수학했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건축사무소를 개설해 실험적 디자인의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된다. 레이 임스(1912~88)와 41년 결혼한 후 부부 디자이너로서 함께 명성을 쌓기 시작했고, 특히 건축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1910~61)과 함께 48년 미국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저가 가구 콘테스트(Low Cost Furniture Design)’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찰스 앤 레이 임스의 실험정신에 입각한 가구 디자인 열의는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마저 가로막을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특히 그들이 디자인한 합판 성형 의자(Molded Plywood Chair)는 얇은 무늬목을 여러 겹 겹쳐 만드는 특수 공법을 이용한 것으로 나무가 갖는 무겁고 딱딱한 느낌을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으로 승화한 작품들이다. 사실 이 작품의 개발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의 침대 디자인 위탁으로 합판 성형에 관계된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있다. 그 실험의 성과들이 가구 디자인에 반영된 것.

찰스 앤 레이 임스 가구 디자인의 특징은 가구를 벽에서 떼어 공간에 놓으면 자유로이 서 있는 조각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는 데 있다. 또한 유기적 구조의 형태들은 새로운 재료와 만나면서 보다 완벽한 조형의 구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48년 작품 ‘라 셰이즈(La Chaise)’ 의자는 조각가 가스톤 라셰이즈의 ‘플로팅 피규어(Floating Figure·1927)’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으로 의자라기보다 하나의 독립된 오브제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전후좌우에서의 모습이 마치 유기적 곡선이 공중에서 유영하듯 부드럽게 물결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의자는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앉을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임스 부부의 의자 중에는 낮잠과 관련된 ‘임스 셰이즈(Eames Chaise)’라는 작품도 있다. 좁은 널빤지 위에서 낮잠을 자려면 자연스럽게 두 손을 가슴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올려진 손은 가슴 아래로 떨어지게 되고 자연히 낮잠에서 깨게 된다.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임스 셰이즈는 편안하게 오랫동안 잠을 자기 위해 만든 의자가 아니다.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이 낮잠용 의자는 팔걸이도 없다. 자명종 소리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깊이 빠진 낮잠에서 억지로 일어나기보다 아주 잠시 꿀맛 같은 낮잠을 즐기고 얼른 일어나라고 만든 것이다. 소음과 스트레스로 억눌린 우리 현대인에게 더욱 어울리는 의자가 아닐까 싶다.

‘인간을 배려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임스 부부만의 디자인 이유와 철학이다. 50년대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그들의 결과물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적 기술에 대한 연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항상 탐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는 그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작품과 더불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해 놓은 사진들을 통해 아직도 식지 않은 임스 부부의 열정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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