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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 사표 내고 떠난 30대 부부 유럽 여행기 ③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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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디자인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코펜하겐 광장(조지 젠슨, 로열 코펜하겐 등 명성 있는 디자인 숍이 하나의 통로로 연결돼 있다)은 모두 휴가 중인 듯 여유로운 정경이다. ‘칼스버그’ 생산국이자 그 맥주의 절반을 소비하는 덴마크인답게 커피 대신 손에 맥주를 가볍게 말아 쥐고 브런치를 즐기는 그 한가로운 광경이란!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에 우리로서는 브런치도, 맥주도 그저 ‘그림의 떡’이었지만 파스텔 톤의 오목조목한 건물 아래 따스한 햇살을 무람없이 쬐고 있는 선남선녀의 달큰한 조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콧노래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한껏 들뜬 나와는 달리 남편은 CSI 수사요원처럼 심각했다. 코펜하겐의 수채화 같은 풍경도 본체만체, 마누라의 요란한 발짓도 남의 것인 양 가이드북만 주야장천 들여다보고 있는 꼴이란. 여행 전엔 예약 문제로 자신의 뇌를 괴롭히더니 떠나 와서는, 여행을 즐기기는커녕 이제는 가이드북 완전 정복에 돌입한 것 같다. 어제의 설움도 가시지 않은 터라 급기야 나는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터지고’ 말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심장마비의 우려를 살 만큼 다혈질적인 성격의 나는 남편이 쥐고 있던 가이드북을 냅다 뺏어 길거리에 패대기쳤다. 그런데 이게 웬 망신? 우릴 지켜본 한 연인이 큰소리로 ‘와우!’ 탄성을 내지르며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순간 내가 남편에게 외친 한 마디. “걱정 마! 베이징 올림픽 덕분에 우릴 중국인으로 알 테니까.”

코펜하겐에서 극적으로 터진 우리의 신경전은 내내 따로 걷기, 째려보기, 돌부리 걷어차기 등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실랑이로 이어졌다. 그러나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슬그머니 겁도 나고, 남편의 팔짱도 그리워졌다. 생각해 보니 타고난 길치인 내가 오로지 관광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남편의 가이드 노릇 덕분이다. 남편이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인간 나침반’이 된 데에는 여행자의 신분보다 ‘가장’ 노릇에 충실해진 한 남자의 슬픔(?)도 있는 듯했다.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 싸움을 접고 우리는 ‘성냥팔이 소녀’의 안데르센을 만나기 위해 유레일 기차를 타고 3시간 동안 오덴세를 향해 달렸다. 마을 전체가 동화 컨셉트로 꾸며진 오덴세는 알록달록한 집들이 진풍경인데, 그 삼각지붕의 자그마한 문을 열면 미운 오리새끼와 인어공주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안데르센으로 상징되는 덴마크의 오덴세가 우화의 세계라면 공예박물관은 덴마크 실용 디자인의 요새다. 모던 디자인의 최전선이라고 불리는 덴마크 디자인의 역사를 ‘의자’를 통해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보는 즐거움이 앉는 즐거움을 압도할 정도다.

우리 부부가 목격한 덴마크는 ‘여유’라고 하는 행복의 한 측면을 비주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나라였다. 이를테면 세계를 선도하는 미끈한 디자인, 한낮에 즐기는 맥주와 브런치, 나시(슬리브리스 셔츠)부터 털모자까지 이어지는 자유로운 사고방식,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빠와 아이의 다정한 한때, 그리고 세금의 50%를 기꺼이 자신과 타인의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복지국가. 말하자면, 코펜하겐은 이상주의적인 도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신비하기조차 한 이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왜 나이가 들면 죄다 100㎏을 육박하는 거구의 노인으로 바뀔까? 그건 혹시 안정과 여유의 결론?

우리는 그 미스터리를 풀지 못한 채 이른바 ‘스웨덴 모델(사회복지와 경제사회 모델)’의 중심지인 스톡홀롬으로 그 호기심을 옮겼다. 스웨덴은 진정 복지국가의 모델인가? 이케아는 어떻게 그렇게 싼 가격에 세계인의 인테리어를 점령한 걸까? 아바와 카디건스를 만날 수는 없더라도, 말랑말랑한 스웨디시 팝은 달콤하게 흐르고 있겠지?

부부 is?
지도를 못 보는 여자와 지도에만 열중하는 남자의 조합. 싸우다가도 한맘으로 애국자가 될 수 있음.

아임·이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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