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이 본 ‘월가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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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스티브 발머(左), 워런 버핏(右)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미국 금융위기는 과연 금융계만의 위기일까. 금융위기에서 한 발 벗어나 있는 듯한 업종의 기업들도 이번 위기를 심각하게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야 할 최고경영자(CEO)들은 위기에 더 민감하다.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브 발머 CEO는 2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MS도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지속되면 기업이 지출을 줄이고 민간 소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들을 고객으로 하는 MS도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는 “미 의회가 구제금융안을 하루속히 승인해 위기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희망했다.

미국 최대의 종합화학회사인 다우케미컬의 앤드루 리버리스 CEO는 “회사에서 근무한 지 32년이 지났지만 이런 위기는 처음”이라며 “빠른 처방이 나오지 않으면 위기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유층을 주고객으로 하는 명품업체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의 명품업체 불가리의 프란체스코 트라파니 CEO는 “당장 크리스마스 시즌의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며 “2010년까지는 금융위기에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기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크레이그 배럿 회장은 “신흥시장이 타격을 입을 수 있지만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는 좋은 때나 나쁜 때를 가리지 않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100억 달러의 자금을 비축해뒀다”고 소개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골드먼삭스(50억 달러)에 이어 1일(현지시간) 제너럴 일렉트릭(GE)에도 30억 달러를 투자했다. 버핏은 CNBC·PBS방송 등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심장마비를 겪은 뒤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1년 전이나 6개월 전에는 할 수 없었던 투자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버핏은 “의원들이 결국 구제금융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으로 인수한 부실자산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상품투자의 귀재’라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미국의 구제금융안은 효과는 없고 경제적 고통만 연장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1990년대 말 위기를 겪은 후 급속한 성장을 한 한국과 러시아를 예로 들면서 “(금융회사들을) 도산하게 놔두면 건실한 성장이 뒤따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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