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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은 ‘인공호흡기’… FRB, 금리인하 카드 만지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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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의 구제금융 법안 표결 직후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左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미 하원에서 한차례 좌초했던 미국 구제금융법안이 상원에서 극적으로 ‘구제’됐다. 공은 다시 하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사이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불길은 전 세계로 옮겨 붙었다. 극심한 신용 경색으로 자금줄이 마르면서 유럽 금융사들이 잇따라 벼랑 끝에 몰리는 등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동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금융위기의 불똥은 본격적으로 실물 경제로까지 옮겨 붙고 있다. 미국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뚜렷해지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경기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각국 통화당국은 물가 불안에 밀려 한동안 제쳐 놨던 금리 인하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① 구제금융안 미 하원 통과 여부

지역구 표심에 달렸지만
재차 부결시키기엔 부담

 미국 상원을 통과한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은 다시 하원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공화·민주 양당 지도부는 통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확신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상원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킨 법안을 재차 부결시키기에는 하원도 부담이 크다. 지난달 29일 부결됐던 법안이 수정·보완됐기 때문에 하원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설 명분도 생겼다.

지난번 투표 때는 찬성 205명에 반대 228명이었다. 반대했던 의원 중 12명만 찬성으로 돌아서면 통과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새 구제금융 법안에는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가 덧붙었다. 우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급을 보장하는 예금자보호 한도를 기존의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까지 확대했다. 부유층 밀집 지역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졌다. 중산층과 기업에 대한 1500억 달러의 규모의 감세안도 더해졌다.

하지만 민주당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공화당 의원들을 유인하기 위해 끼워 넣은 감세안에 반발하고 있다. 이번에도 지역구 ‘표심’이 결정적 변수다. 상원은 여론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임기 6년의 상원의원 가운데 3분의 1만 11월 선거에서 재신임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기 2년의 하원의원들은 11월 선거에 모두 나서야 할 처지여서 여론의 향배에 민감하다.

조민근 기자

② 실물경제 위축 어디까지

미 제조업 지수 9·11 뒤 최저
유럽 실업률 7.5%까지 올라

 금융위기의 후폭풍을 맞은 세계 실물경제가 하루가 다르게 위축되고 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 지수는 지난달 43.5를 기록해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지수가 50이 넘으면 경기가 나아진다는 뜻이고, 밑돌면 나빠진다는 의미다. 특히 기름값 타격까지 겹친 미국 내 자동차 판매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96만5000대가 팔려 15년여 만에 처음으로 월 100만 대 밑으로 떨어졌다. 한 해 전에 비하면 27% 줄어든 수치다. 미국 빅 3인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는 물론 그간 잘나갔던 일본 도요타마저 지난해 같은 달보다 미국 판매가 32% 급감했다.

유럽·일본 등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발표된 유로존 15개국의 8월 실업률은 예상을 깨고 7.5%까지 치솟았다. 일본도 대형 제조업체 업황 지수가 올 3분기 5년여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이 올 경제성장률 전망을 1.2%에서 0%로 낮출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추경예산과 별도로 2차 경기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눈여겨볼 것은 미국의 고용(3일)·소비(7일)·주택(8일) 지표다. 이들이 계속 나빠진다면 실물 경제의 위축이 재확인되는 셈이다.

김선하 기자

③ 각국 금리 처방 쓸까

“글로벌 공조 절실한 시점”
‘고물가’ 유럽은 일단 동결

 구제금융이 집행되면 꽉 막힌 금융권의 숨통은 일단 트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숨넘어가는 환자에게 인공호흡을 해 준 정도밖에 안 된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경제 체력엔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금리 인하다. 그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연 2%인 정책금리를 더 내리는 데 무척 망설였다. 물가 걱정 때문이었다. 특히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저금리 정책이 거품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더욱 몸을 사리게 했다. 그러나 이젠 FRB도 물러나 있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지난 몇 주 새 금융뿐 아니라 실물경제도 심각하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일 “FRB가 금리를 내리는 쪽에 한층 더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물론 금리 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특히 미국만 금리를 내리고 다른 나라들이 동결한다면 ‘달러 가치 하락→상품 가격 상승→물가 상승’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실제 유럽중앙은행(ECB)은 2일 기준금리를 종전처럼 연 4.25%로 동결했다. 고물가 탓에 당장 금리를 낮출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럽도 침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물가 상승세가 꺾이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본다. 동부증권 강성원 애널리스트는 “경제 회복을 위해 글로벌 정책 공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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