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보유 외환, 섣불리 풀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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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 상원이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다행한 일이다. 미 하원도 더 이상 대중영합주의에 사로잡혀 이 법안을 다시 부결하는 무책임한 행동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현재로선 구제금융이 금융위기 확산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다. 정상 궤도로 회귀하는 미국의 수순과 달리 원-달러 환율은 1200원을 웃돌았다. 달러 가뭄이 좀체 진정되지 않는 양상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어제 “외환보유액은 필요할 때 쓰려고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달러를 풀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것이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지금처럼 달러 고갈이 심각할 때는 외환보유액을 푸는 게 당연하다. 사실 이럴 때 투입하려고 쌓아놓은 게 외환보유액이다. 그러나 함부로 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올 들어 외환보유액은 225억 달러 이상 감소했다. 물론 239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남아있어 아직까지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점이다. 미국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달러 가뭄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정부의 장담과 달리 원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개선효과는 그다지 기대할 게 못 된다. 이란 사태가 악화될 경우 국제 유가가 언제 다시 요동칠지 모른다. 지난 7월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이 90억 달러의 주식을 한꺼번에 순매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당장 투입할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액 규모도 의문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유동 외채를 뺄 경우 최대 80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가 스와프시장에 공급한 100억 달러나 한국투자공사(KIC)가 메릴린치에 투자한 외환보유액은 긴급사태 때 유동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외환보유액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금융외교가 절실하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산유국 국부펀드나 주요 국 중앙은행들과 외환 스와프 한도를 늘리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